곱상한 고아라는 잊어주세요

서울 사람이 다 된 경남 진주 출신 소녀가 잊고 있던 사투리를 다시 입에 담았다. 걸쭉하게 욕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함 지르면서 예전 모습을 꺼내 보였다. "그동안 제 이미지는 얌전한 인형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깨고 싶었어요." tvN '응답하라 1994'의 히로인 고아라(23)가 작정하듯 말했다.

후줄근한 추리닝에 쥐가 파먹은 듯한 단발머리를 하고 드러누워 얼굴이 춘장 범벅될 때까지 짜장면을 삼키는 여자. 마산에서 갓 상경한 하숙집 딸,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94학번 성나정을 소화하는 고아라의 모습이다. 지난 5월 작품 섭외가 들어왔을 때, 덮어놓고 "하겠다"고 한 이유는 이우정 작가의 한마디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고아라를 어떻게 망가뜨려 볼까?' 하시더라고요. 저도 변신이 필요했거든요." 그녀의 변신에 드라마는 16일 최고시청률 10%(닐슨코리아 케이블TV 가입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원래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2003년 경험 삼아 친구 따라 치른 연기자 오디션에 덜컥 붙어 그해 11월 KBS 청소년드라마 '반올림#' 주인공이 됐다. 당찬 여중생 '옥림이' 역은 단박에 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영화 4편, 드라마 3편을 찍었지만 '한 방'이 없었다. 인형 같은 얼굴이 연기를 방해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고아라는 "다른 이유보단 그저 내가 부족했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반전(反轉)이 필요한 그에게 이 드라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예쁘장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제대로 망가지기 위해 작정했다. "걸쭉한 사투리를 쓰기 위해 진주 친구들에게 전화도 자주 걸고, 부산 사는 친구 집을 두 번이나 찾아가 '사투리 특강'도 받았죠." 사투리로 쓰인 대본도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 "'뭐라 카대'는 마산, '뭐라 하대'는 부산 식(式)이래요. 디테일이 다 다르더라고요." 극 중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은 그의 아이디어다. "당시엔 머리끝을 면도칼로 잘라내 층을 냈대요. 이게 다 '면도칼 커트'예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94년에 그는 네 살이었다. 90년대 중반 감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신문을 찾아 스크랩을 하기도 했다. "극 중 이상민 선수 '빠순이' 역할인데, 이상민 선수를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농구대잔치 영상을 모두 돌려보고, 사진도 인쇄해서 갖고 다녔죠."

연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노래다. "서태지와아이들의 '너에게' 같은 노래를 들으면 당시 상황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PD님이 장면에 어울리는 노래를 틀어주세요. 그때 노래를 들으면 그때 감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신기하죠."

그는 성나정을 연기하며 '중앙대 연극영화과 08학번'으로 대학을 다닌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고 했다. "대학 신입생 동기끼리 MT 가서 놀던 장면(3화)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신입생 때 과 MT, 동기 MT 다니면서 즐거웠던 기억도 되살아났고요. '침묵의 007빵' 하면서는 너무 몰입해 NG를 세 번이나 냈어요. 잠에 취해 촬영하면서도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그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인형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던 지난 시절과도 작별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아라의 변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