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후손의 기부 사랑 "회사도 몸도 다 주고 갈 것"

"네 힘으로 회사를 인수하면 모를까 물려주는 일은 없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려면 다른 직원과 똑같이 인턴부터 시작해라."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 회사 ERA의 한국법인 ERA코리아 이영석(57) 회장은 지난 2월 큰아들이 입사할 때 분명하게 말했다고 했다. 그는 올 6월 결혼해 같이 살고 있는 아들 내외한테서 '방세'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결혼하고 독립한 아들이 내 집에 들어와 살면 방세 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내년에 정식 사원이 되면 100만원으로 올려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14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사후 유산을 기부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결심하고 늘 얘기해 온 일이라 아내와 두 아들(26·23세)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늘 "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다 옥사(獄死)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도록 뭔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자선 냄비는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습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치신 할아버지를 생각해 3년 후 환갑 때는 제 시신 기증도 약속할 겁니다."

그는 1994년 ERA와 독점 계약을 맺고, 국내 최초로 부동산중개업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복덕방'이 대부분이던 시절, 선진 고객관리 시스템을 들여와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IMF 때 회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렵던 시절, 이 회장은 본격적인 기부를 시작했다. "겨우 신용불량자 신세는 면했을 때, 지인(知人)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기부를 권했어요." 점심 값 아껴 매달 10만원씩 모았고, 매년 적어도 100만원씩 기부했다.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 156호 회원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회사를 상업용 부동산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100여명의 회사로 키웠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기부에서 얻는 뿌듯함, 자신감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사후에 재산 일부라도 공익 목적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02-626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