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위해 제사 지내던 사직단(社稷壇·사적 121호), 원형 찾아야죠"

"사극을 보면 '종묘사직'이란 말이 꼭 나오잖아요. 종묘(宗廟)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일반인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직단(社稷壇·사적 121호)에 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몰라요. 1922년에 일제가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만들면서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됐죠."

김영명(57) 예올 이사장은 만나자마자 '사직단' 얘기부터 꺼냈다. "아직도 다들 사직공원으로 알고 있어요. '사직단'으로 명칭이 다시 바뀐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니까요. 심지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조선시대에 나라의 풍요를 위해 제사 지내던 사직단은 일제강점기 때 공원으로 격하된 후 지금은 도서관, 동사무소, 파출소 등 각종 공공건물에 끼여 위용을 잃었다.

김 이사장은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직단은 백성과 나라 전체를 위해서 제사를 지낸 곳이니 얼마나 중요하냐"면서 "그런데도 이곳이 가꾸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적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김영명 이사장은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현대가(家)의 며느리,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부인이다. 누구 딸, 누구 부인으로 알려진 탓일까. 공개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지 않는 그이지만, 전통문화 계승 및 보존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예올'을 대할 때만은 보폭이 다르다. 2002년 언니인 김녕자 전 이사장과 함께 예올 창립 멤버가 됐고, 지난 1월에는 이사장에 취임했다.

"1996년 월드컵 유치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모임 같은 곳에서 외국인 손님 만날 일이 많았어요. 지금이야 K팝이다 뭐다 해서 한국 문화가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야 어디 그랬나요. 문화재 안내판 하나라도 제대로 세우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예올을 만들었어요."

주위에서는 그가 '예올' 이사장을 맡은 것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조용히 내조하고 앞에 나서지 않으려 조심했는데 어느덧 저도 머지않아 환갑이 되더라고요. 예올에 봉사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어요." 남편인 정 의원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남편이 제일 큰 후원자죠. 제가 하는 일을 정신적으로 지지해줘요."

역사·문화답사 프로그램, 반구대 암각화 보존 운동, 전통 장인 후원 사업 등 여러 사업을 벌여온 예올의 최근 역점 사업은 '사직단' 복원 관련 사업. 2008년부터 문화재청 '한 문화재 한 지킴이'의 사직단 지킴이로 '사직단의 제 얼굴'을 찾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특히 사직단의 '명예'를 되찾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사직단의 역사성 회복'을 위한 100만 서명운동에, 26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사직단,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대규모 포럼도 연다.

"사직단 주변에 5만평 규모의 녹지가 있어요. 사직단 안에 들어선 시설물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사직단을 이 녹지와 연결해 문화·역사·환경 벨트를 조성하는 것이 우리 바람입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색안경'이란 말을 꺼냈다. "지난 10년간 활동하면서 제가 혹시 예올에 누가 될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특히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부잣집 사모님들의 사교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속상해요. 그저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분이라면 누구든 회원이 될 수 있어요. 파티 플래너, 은행원, 사진가…. 회원들 직업도 얼마나 다양한데요."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80%가 여성 회원이라 남성 회원을 늘리는 게 우리의 숙제네요. 호호호."


☞사직단

조선시대에 백성들의 윤택한 살림살이를 위해 토지의 신(사·社)과 곡식의 신(직·稷)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