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사람이 ATM에 놓고간 돈, 주워갔다간 절도범 됩니다

지난 9월 말 서울 한강로1가 W은행 용산지점. 택배기사 임모(60)씨는 돈을 찾으러 갔다가 현금인출기(ATM)에 놓여 있는 현금다발을 주웠다. 홍모(27)씨가 은행 업무를 보다가 놓고 간 5만원권 220장, 1100만원이었다. 임씨는 돈을 들고 '튀었다가' 이틀 만에 인근 파출소에 반납하러 갔다. 그러나 임씨는 파출소에서 '검거'됐다.

홍씨의 신고로 절도 피의자를 쫓고 있던 경찰은 임씨의 의도가 다분히 불순하다고 봐 임씨를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임씨는 경찰에서 "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바빴다"며 훔쳐간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은행에서 돈을 봤으면 그냥 놓고 가거나 은행 창구에 맡길 일이지 돈을 들고 나갈 이유가 있느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큰돈이 아니라도 ATM에 올려진 돈을 주워갔다가 피해자 신고로 경찰에 입건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만 이 같은 ATM 현금 도난 신고가 한 달 평균 20건 가까이 들어온다. ATM 주변에는 CCTV가 여러 대 설치돼 있어 10만원 미만 소액이라도 '땡잡았다'는 생각으로 주워갔다간 쉽게 붙잡히게 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돈을 주워 가는 사람 대부분은 은행 고객인 경우가 많아 은행 고객 정보로 피의자를 특정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ATM 현금 도난 피해자들도 소액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용산구 이촌동에 사는 박모(64)씨도 지난달 7일 오후 동네 은행 ATM기에서 3만원을 뽑은 후 잊고 갔다가 경찰에 신고해 '절도범'을 붙잡았다.

용산경찰서 양윤교 형사과장은 "아무리 소액이라도 ATM 위에 있는 돈을 가져갈 때는 '영득(領得)'의 의사가 있다고 보고 불구속 입건해 기소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진해서 신고하면 감경돼 '기소유예 처분'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