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골목 투어] (7) 제주시 서문공설시장·국수문화거리

 

곰탕 한 그릇이 1만원에 육박하는 요즘, 소고기가 1인분 1만원이라면 '소도 웃을 일'이라며 믿지 않을 이가 많을 듯하다. 그런데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서문공설시장'에서는 한우, 그것도 1등급 소고기 1인분 200g을 1만원부터 판다. 맛있기로 이름난 제주 돼지고기는 1인분 200g이 5000원이다. 당면을 넣지 않고 찹쌀과 멥쌀, 메밀가루를 넣은 제주식 순대 가게도 서문시장에 모여있다. 멀지 않은 삼성혈 근처에는 또 다른 제주 토속 음식 고기국수를 파는 가게가 몰린 '국수문화거리'가 있다.

●서문시장 정육 식당 골목

서문시장이 제주산 소·돼지고기를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된 건 2010년쯤이다. 재래시장이 쇠락하며 손님이 줄자 정육점과 식당이 힘을 합쳤다. 정육점에서 싸게 산 고기를 가져오면, 식당에서는 돈을 최소한만 받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준비해주기 시작한 것.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식당에 가져가면 '양념값'만 받고 회 떠주고 매운탕 끓여주는 것과 비슷한 식이다.

서문시장에는 한아름정육마트(064-753-1025), 부부정육점(064-758-3821), 용담정육마트(064-753-5333) 등 정육점 세 곳이 있다. 모두 제주산 한우와 돼지고기를 판다. 어떤 부위건 원하는 양만큼 구매할 수 있다. 소고기는 대개 등심과 차돌박이를 섞어 산다. 1인분 200g에 1등급 1만원, 1등급 1+ 1만3000원, 1등급 2+ 1만5000원이다. 돼지고기는 오겹살과 목살이 섞인 세트가 1인분 200g 5000원이다. '한아름정육마트' 주인 장선희(52)씨는 "소고기 여러 부위가 한데 나오는 5만원짜리 접시면 어른 넷이서 먹는다"고 했다. 전화 주문 하면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고기를 샀으면 시장으로 들어간다. 16개 식당 중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정육점에 물어보면 알아서 연결해준다. 식당에서는 4인 기준 식탁 하나당 1만원씩 받고 상을 차려준다. 4명이 넘을 경우 1인당 3000원이 추가된다. 고기는 육질이 특1등급이랄 수는 없지만, 가격을 따져본다면 만족도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고기만 먹는다면 어떤 식당에 가건 상관없지만, 식당마다 경쟁력을 높이려고 저마다 '비장의 무기'라 할 만한 메뉴를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다. 제주 토박이로 '서문시장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승헌(41)씨는 "'보내식당'은 우럭매운탕, '라온샘' '샘이네'는 순댓국, '경태식당'은 비빔국수·멸치국수, '학사식당'은 새끼회, '평화식당'은 청국장, '대우식당'은 청국장·김치찌개·얼큰순부두, '영미식당'은 매운탕을 잘한다"고 알려줬다. '미성식당'은 직접 개발한 족발 무침(2만원)이 맛있다. 야들야들한 족발을 오이·양파·고추 따위 채소와 함께 새콤 달콤 매콤한 양념에 무쳐 낸다. 겨자의 얼얼한 매운맛과 식초의 새콤한 맛이 술안주로 그만이다.

●서문시장 순대 골목

이승헌 단장은 "제주 순대는 '마른 순대'로 먹어도 맛이 있다"고 했다. 마른 순대라? "차게 식은 순대를 말해요. 제주에서는 잔치 때 순대가 빠지면 안 돼요. 미리 순대를 만들어놓는데, 이걸 마른 순대라고 불러요. 식어도 맛있지요." 식으면 말라서 굳는 당면을 넣지 않고,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멥쌀이나 찹쌀을 따로 혹은 섞어서 채운다는 점이 '육지' 순대와 다르다. 멥쌀보다 비싼 찹쌀을 많이 쓸수록 당연히 고급이다. 피를 많이 넣었는데도 경상도·전라도 일부 지역 피순대보다 씹히는 질감이 훨씬 나긋나긋 부드럽다. 메밀가루를 많이 넣는다는 점도 다른 지역과 다르다.

이 단장은 "서문시장은 원래 제주에서 순대로 유명한 시장"이라며 "제주도 웬만한 식당에서 파는 순대는 모두 서문시장에서 공급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육점과 마찬가지로 서문시장에는 몽실할머니순대(064-753-8180), 서문별미순대(064-756-5431), 진경순대(064-752-2422) 등 세 곳이 있다. 몽실할머니와 진경순대에서는 순대를 1인분씩 사 먹을 수 있다. 서문별미순대는 대량 주문 위주로 받아서인지, 찾아가니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한 접시 3000원인데 꽤 푸짐하다.

시장 내 식당들은 이 순대 가게에서 받은 순대로 국밥을 끓여 낸다. 한 그릇 6000원쯤이다. '샘이식당' 주인 김숙례(62)씨는 "당면을 싫어하는 분들이 있어서 찹쌀로만 만든 순대를 쓰고, 돼지뼈를 10시간 곤 국물에 말아서 따로 삶은 돼지 내장 부속 부위를 잘게 썰어서 얹어 낸다"고 했다. 고춧가루를 넣고 끓여 내거나, 들깨 가루를 넣는 등 식당마다 맛 내는 비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국수문화거리

고기국수는 돼지고기와 뼈를 푹 삶은 육수에 면을 삶아 돼지고기 수육을 올린 제주 전통 국수 음식이다. 결혼 등 잔치 때 먹던 국수에서 전래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잔치국수는 대개 멸치 육수를 쓴다. 고기국수가 식당 음식으로 대중화된 게 언제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골막식당'(064-753-6949)과 '파도식당'(064-753-3491)이 처음 팔았다고 알려졌다.

돼지 육수는 냄새나고 기름질 것이란 편견이 많지만, 맑고 담백한 편이다. 감칠맛은 소 육수보다 더 낫달 수도 있다. 고기국수 전문점들은 돼지 육수만 쓰지 않고 멸치 육수를 섞거나, 닭 육수를 더하기도 한다. 삼성혈 옆을 지나는 삼성로 그리고 삼성로에 직각으로 붙은 신산로에 고기국수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모여있다. 파도식당도 원래 삼성로에 있다가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제주시는 이 두 거리를 '국수문화거리'로 지정했다. '자매국수'(064-727-1112)과 '만세국수'(064-727-7056) '삼대국수'(064-759-6644)가 이름났다. 대개 한 그릇 6000원 받으며, 멸치국수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