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위로는 없다, 그런데 위안이 된다

오케스트라에 들어올 어린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국어로 인사말을 준비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건네지만 아이들은 힐끔거리며 눈치만 보다가 쌩하게 그를 지나친다. 하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를 잡고 연주를 시작한 순간 아이들이 그에게로 모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음악을 듣는 이들은 반질반질한 조약돌 같다. '안녕?! 오케스트라'는 이 조약돌들이 모여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채집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과 경기도 안산 다문화 가정 어린이 24명이 함께 만든 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1년간의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MBC의 TV다큐가 시작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지난해 방영됐고, 국제에미상 예술 프로그램 부문에 한국 최초로 결선에 진출했다. 영화는 TV다큐를 만들면서 찍은 영상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인터뷰를 덧붙여 이철하 감독이 재편집해 만들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대부분 다문화 가정 자녀다. 이들은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어린 시절이 꼭 그랬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유일한 동양 아이였고, 일곱 살 지능을 가진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입양한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보영 PD에게서 한국의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 처음 들었다. 내가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이들과 연결이 돼 있다고 생각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1년간 3주에 한 번씩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영화가 소수자를 다룬 다큐들이 쉽게 보여주는 동정이나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힘이 크다. 그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감상(感傷)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인다. 섣불리 희망과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동남아 국가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온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가 건넨 첫 마디는 "인생이란 굉장히 불공평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위로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그래서 이 아이들이 음악과 악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 속 '안녕?!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공연은 지난해 12월 30일 안성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공연 제목은 '엄마의 자장가'. 아이들이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장가다. "일하는 엄마의 쉬는 시간은 곧 자는 시간이잖아요. 엄마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어요."(제1바이올린 준마리)

28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