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믿습니까

거짓을 말하는 선인(善人)과 진실을 말하는 악인(惡人). 연상호 감독(35·사진)이 만든 '사이비'란 세계에는 이 둘만이 있다. "이 둘 중 누구를 믿고 싶은가?"를 집요하게 묻는 이 애니메이션은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놓는다.

수몰(水沒) 예정지인 한 작은 시골마을에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 최경식과 노름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김민철이 들어온다. 사기 전과(前科)가 있는 최경식은 신심(信心) 깊고 순진한 목사 성철우를 내세워 마을의 수몰 보상금을, 김민철은 딸의 대학등록금을 갈취한다. 최는 약효가 있다는 이상한 물을 팔고 집 잃은 사람들에게 천국 같은 마을에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수가 빤히 보이는 사기이지만 이미 터전을 잃고 좌절한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조건 따른다. '최'의 전과와 사기 수법을 알게 된 '김'은 마을 사람들을 말려보지만, 이미 마을의 '문제인간'으로 알려진 그의 말은 경찰도 믿어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학교 폭력을 다룬 전작 '돼지의 왕'으로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은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도 지옥에 가까운 세상과 어두운 마음을 품은 인간을 그려낸다. 투박하고 거친 그림체는 이전보다는 정제됐지만, 채도가 낮은 색감과 뾰족한 선은 그대로다. 전문 성우나 아이돌 가수가 아닌 권해효·양익준·오정세·박희본 등 영화배우들이 더빙을 했다. 그림과 소리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온도에 딱 맞는다.

궁핍하고 좌절한 인간들이 그릇된 믿음을 갖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이 영화는 믿음에 관한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진다. '김'의 친구 아내는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최'가 파는 '이상한 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친구는 '김'에게 "나 때문에 고생하며 살아서 힘이 없던 여자가 믿음을 가진 이후 생생하게 살아났다"며 아내의 믿음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믿음은 궁지에 몰린 유약한 인간에게 도피처 혹은 힘이 되는 것인가?

사기꾼이 내세우는 종교가 하필이면 기독교이기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 연 감독은 "이 영화는 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관한 것이다. 3~4개월 정도 한국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했다"고 했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뜻 '似而非' 제목 먼저 쓰고 이야기 풀었죠

작품 시작 전 ‘사이비’란 제목을 써넣고 연상호 감독은 무척 흡족했다고 한다. 그는 “‘사이비(似而非)’라는 한자 자체가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 제목에서 이야기를 써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상명대 서양화과에서 회화를 전공한 연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2009)과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으로 주목받았다.

―종교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뤘다.

“재밌는 이야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누구나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주제가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와 잘 맞는가.

“애니메이션은 모든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다. 그림이란 것은 실사(實寫)보다 단순하다.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야기나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여전히 컬러는 어둡고, 선은 날카롭다.

“이미 차기작을 정했는데 역시 어두운 이야기다. 하지만 나 스스로 이렇게 계속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는 밝은 이야기도 다루고 싶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지금까지 나왔던 애니메이션과는 결이 다른 스토리텔링을 보여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