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1 04:00 | 수정 : 2013.11.21 11:19

[주말매거진] 영도의 특이한 식당, 오래된 맛집

 

부산 음식문화에 해박한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최원준(시인)씨는 "부산에 맛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건 서로 물어뜯거나 해치지 않고 두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이나 호남·제주 출신으로 부산에 정착한 이들이 가져온 다양한 음식을 부정하는 대신 관용하고 환영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산화했다는 것이다. 부산이 가진 맛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도에서 오래된 식당, 그리고 영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들을 맛봤다.

1 부산체고 앞 골목에 있는 ‘골목분식’ 내부. 2 ‘골목분식’의 비빔라면. 3 ‘영도소문난돼지국밥’. 4 ‘왔다식당’의 스지된장전골.
1 부산체고 앞 골목에 있는 ‘골목분식’ 내부. 2 ‘골목분식’의 비빔라면. 3 ‘영도소문난돼지국밥’. 4 ‘왔다식당’의 스지된장전골.
중리해녀촌 제주말 쓰는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돌멍게를 바로 따서 내준다. 싱싱하고 향긋한 돌멍게와 멍게, 소라, 성게를 3만원이면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문어는 2만원. 정오부터 해질 때까지만 영업한다. 중리해변 끄트머리에 있다.

영도소문난돼지국밥 최원준 대표가 "돼지국밥 맛의 원형을 보여주는 식당"이라길래 찾아갔다. 올해까지 75년 4대째로, 기록상으로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이라고 한다. 돼지뼈로만 뽑은 국물은 자연스러운 뽀얀 빛깔이면서 잡내 없이 깨끗하다. 이 국물에 밥을 말고 그 위에 따로 삶은 돼지고기를 얹어 준다. 대교동2가 170-3, (051)416-1546

남항시장 빙장회 시장통에 '빙장회'란 간판을 단 식당이 7~8곳 보였다. 최원준씨는 "빙장회(氷藏膾)란 얼음(氷)에 저장(藏)시킨 생선회라는 뜻"이라며 "전남 여수의 선어회 문화가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부산은 산 생선을 잡은 활어회 문화입니다. 그런데 호남 분들은 생선을 숙성시키면 씹는 맛은 떨어지지만 감칠맛이 확 좋아진다는 걸 알고 있었나봐요." 가게마다 사각형 유리함에 얼음과 생선을 채워놨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도 숙성시킨다. 민어·방어·삼치 따위를 모둠으로 한 접시에 2만~5만원쯤 한다.

제주할매순대국밥 영도는 제주 출신이 많은 곳. 당연히 제주 사람들이 즐기는 돼지고기와 돼지의 여러 부속을 이용한 음식이 흔하다.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제주 전통식 순대는 아니지만, 국물이 잡내·잡미 없이 구수하다. 그런데 수육으로 나온 돼지고기에 감동했다. 살과 비계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오겹살이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싱싱하다. 순대국밥 5000원, 수육 1만·2만원. 남항시장 안, (051)416-8410

왔다식당 스지전골 '스지'는 소힘줄을 뜻하는 일본말. 일본 어묵탕에 빠지지 않는 재료다. 이 소힘줄을 넣고 끓인 스지전골(1만2000·1만5000·2만원)과 스지김치찌개(6000), 스지된장찌개(6000원) 등을 판다. 소힘줄만 더했을 뿐인데 국물이 훨씬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소힘줄 씹는 맛도 좋다. 소힘줄 자체의 맛을 즐긴다면 국물이 맑은 전골을 추천한다. 된장전골과 김치전골도 있는데, 찌개를 2~4인 분량으로 늘린 것일 뿐 맛은 같다. 청학2동 148-163, (051)412-2676

와글와글 라밥 라밥은 '라면밥볶이'의 줄임말. 떡볶이 국물에 라면 사리와 밥, 치즈가루, 설탕, 비엔나소시지를 넣고 졸이듯 볶은 다음 김가루를 듬뿍 얹어서 낸다. 좀 맵고 꽤 달다. 잘 만든 음식은 분명 아닌데, 희한하게 멈출 수 없이 계속 먹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부산체육고 정문 맞은편에 있어선지 양이 엄청나게 많다. 5000원·1만원짜리 2가지가 있는데, 1만원짜리를 남자 어른 셋이 다 먹기 버겁다.

골목분식 비빔라면 다세대주택 반지하층에 뿌연 미닫이 유리문이 있다. 불이 꺼져 있어 문 닫은 듯 보이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들어간다. 비빔라면은 삶아서 익힌 뒤 찬물에 씻은 라면국수를 라면수프 가루와 설탕에 무쳐 낸다. 매운 라면수프와 설탕 단맛의 조화가 미묘하다. 소 2000원, 대 2500원, 특 3000원. '와글와글'이 있는 골목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인다.

달뜨네 시락국밥·선어회 해가 지자 가게 지붕에 '달'이 떴다. 노란색 낙하산천으로 만든 공기주입식 달이다. 명함은 화투 팔광이다. 인테리어가 본업인 주인 위승진씨가 직접 만들었다. '시락국밥'(3500원)이 주력 메뉴. '꼬치'라는 말린 생선으로 뽑은 국물에 3년 숙성한 된장으로 맛을 낸다. 소힘줄을 더한 '스지시락국밥'(5500원), 한치를 넣은 '한치시락국밥'(4500원)은 더욱 든든하다. 생선회 숙성솜씨도 좋다. '선어모둠 생선회' 1만·3만·5만원. 영선동 절영로 207호, (051) 418-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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