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땅 에티오피아서 20년… '희망'을 세운 그녀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밀알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정순자(56) 한별학교 교장의 얼굴은 오랫동안 그을린 구릿빛이었다. 1993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의료·교육 봉사 활동을 해온 정 교장은 오는 25일 '개발 원조의 날'을 맞아 제8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받는다. "다시 태어나도 에티오피아로 갈 겁니다. 6·25전쟁 때 우릴 도운 그들을 위해 한국인인 제가 조그만 보답이라도 했다면 다행입니다." 6·25전쟁 때 3개 대대 6037명을 파병한 에티오피아군은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6명을 냈다.

1993년 에티오피아 오지 마을 '랑가노'에 도착한 정 교장과 남편 박수일(60) 목사는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현지인을 도왔다. 정 교장은 그곳이 '슬픔의 땅'이었다고 말했다. "분만이 임박한 10대 임신부를 병원으로 옮겼지요. 가까스로 나온 아이가 머리 반쪽이 없더군요. 어머니가 영양실조에 걸린 탓에 태아의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못했던 겁니다." 한밤중, 마을에서 40km 떨어진 병원에 환자를 싣고 갔지만 도착해보니 이미 숨을 거둔 적도 있었다. 싸늘한 주검을 부둥켜안고 부부는 통곡했다. "'짐 싸서 돌아가자' 결심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정 교장은 말했다.

2005년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한별학교'를 설립했다. 교실 4개, 학생 180명 규모 작은 학교였다. 독지가는 이듬해 지원을 끊었다. "학교 문을 닫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어머니들의 눈빛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군요." 정 교장은 남편 몰래 한국에서 수천만원 빚까지 끌어와 교실을 짓고 교사 월급을 줬다. 현재 21개 교실에서 유치원~고등학교 학생 1100여명이 공부한다. 2011년부터는 밀알복지재단이 학교 운영을 지원하게 돼 정 교장은 시름을 덜었다.

그는 "에티오피아는 이제 '기쁨의 땅'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별학교 학생은 정 교장을 한국어로'엄마'라고 부른다. "애들이 와서 '엄마, 전 나중에 높은 공무원이 되면 뇌물 같은 것은 받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해요.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일상적인 이곳에서요." 에티오피아 부흥을 위한 '희망의 밀알'을 뿌리는 정 교장의 요즘 바람은 하나다. "2년만 지나면 한별학교 학생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한국의 서울대 같은 곳에서 에티오피아 학생을 받아 훌륭하게 교육해 돌려보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