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산 피노키오… 정직함에 푹 빠졌죠

헤르만 헤세의 유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 초판본, 알베르 카뮈의 친필 편지…. 영미문학 번역가이자 수집가 이상영(61)씨는 평생에 걸쳐 세계적 작가들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수집품들을 모아왔다. 그의 수집품만으로 한국에서 '헤르만 헤세 특별전'(2000), '노벨문학상 110주년 특별전'(2011) 등의 굵직굵직한 전시가 열렸고, 작가 후손들이 찾아와 관람할 정도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30여년간 대문호의 희귀본과 소장품을 모아온 그의 첫 상설 전시관이 '피노키오 박물관'이라는 것이 의외다. 25일 개관하는 이 박물관은 경기도 파주 문발동 출판단지 내 열림원 건물에 들어섰다. 피노키오 박물관 건립에 뜻을 모은 정중모(53) 열림원 대표가 전시 공간을 제공했다. 지난 19일 만난 이 관장은 피노키오를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화인 동시에 위대한 문학"이라고 평했다. "순수한 장난기, 악의 없는 고집, 사랑받고 싶은 욕망… 피노키오는 어린이들의 공통적 기질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작품 '피노키오의 모험'(1883)은 목수 제페토가 장작을 깎아 만든 작은 인형 피노키오가 온갖 모험을 겪으며 결국 착한 사람이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전시관에는 1910년대부터 최근까지 출간된 피노키오 초판본, 1920년대 출간된 팝업북(책을 펼쳤을 때 입체적으로 그림 등이 튀어나오는 장난감 책), 전 세계 300여개의 피노키오 캐릭터, 피노키오 시계와 탈 등 다양한 전시물로 채워졌다. 목각·고무·플라스틱·철제 인형 등 피노키오의 변천을 통해 20세기 완구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화의 줄거리가 미로처럼 얽힌 전시관 벽면을 따라 펼쳐진다. 이 박물관은 본고장 이탈리아 콜로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피노키오 전시 시설이다.

이 관장이 피노키오 관련 수집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부터다. 헤르만 헤세를 비롯해 대문호들의 자료를 수집하던 중 외국 수집가들에게 피노키오 관련 골동품이 인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거짓말을 하다 코가 길어져선 안 되겠죠? 처음엔 돈을 벌 생각이었어요. 피노키오 관련 물품들은 사고 돌아서면 값이 올랐거든요(웃음)."

전 세계 경매장, 골동품 가게를 돌며 모은 피노키오 수집품이 40여 개국 1300여 점에 이른다. 수집품은 몇만 원짜리부터 수천만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해외 경매장에 갔다가 돈이 모자라면 낙찰자를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찾아가서 사오기도 했다.

돈 벌 생각으로 모은 수집품이지만, 피노키오가 주는 메시지 '정직'은 그의 마음도 움직였다고 한다. "피노키오는 '정직하면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했어요. 이제 와 그것을 팔아 큰돈을 번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가장 대중적이고 모든 이에게 정직을 가르칠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을 생각하게 됐죠."

마침 정중모 대표가 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파주 출판단지 열림원 건물은 건축가 고(故) 정기용(2011년 작고) 선생의 작품이다. 정 대표는 "피노키오 박물관이야말로 건축가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문화시설"이라고 했다. "정기용 선생은 생전에 어린이를 위한 문화공간을 염두에 두고 이 건물을 만들었죠. 1층에 150석 규모의 소극장을 설계한 것도 아이들을 위한 것이죠. 박물관을 보고 가셨다면 좋았을 텐데."

정 대표는 문화 콘텐츠 사업으로서 박물관을 활용할 계획이다. "피노키오는 원래 이탈리아 작품이지만, 지식재산권이 소멸된 지금은 전 세계인의 것입니다. 잘 가꿔나간다면 우리의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관장과 정 대표는 내년에 박물관에서 피노키오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이탈리아 피노키오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피노키오 자전거 대회' 등 축제도 기획하고 있다.

"박물관 1층 소극장에선 관련 연극도 공연할 예정입니다. 피노키오가 주는 교훈은 어린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가치가 있어요. '정직'의 가치가 어른들의 마음속에 잠자는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박물관이 기여하길 희망합니다."(이상영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