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세차게 일렁거린다. 마지막까지 붙어 떠나가지 않던 나뭇잎도 찬바람 서슬에 모두 떠나가고 산은 보고 싶은 것은 다 보라는 듯 가슴까지 열고 고요히 섰다.
뎅그렁 뎅그렁.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자 거실 창밖에 매달아 놓은 풍경이 운다. 바람이 그다지 세지 않은지 들릴 듯 말 듯 여리다. 그 여린 소리를 듣고 앉아 있자니 문득 문풍지 소리가 그립다. 이런 바람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문풍지 소리.
겨울밤 문풍지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방바닥에 화로 하나 들여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발그레한 삼십 촉 전등 아래 도란거리는 가족들이 그립다. 밤에 눈이 내리는 길을 걸어 손을 호호 불며 마루 앞에 서면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섬세한 문살이 가로세로 지른 방문 앞에는 가족들의 정다운 그림자가 창호문에 어른거렸다.
그 옛날 내 유년 시절
햇살 좋은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고향 집에서는 김장 다음으로 큰 행사인 창호지를 방문에 바르는 행사가 벌어졌다. 방문을 떼어서 양지바른 곳에 내려놓고 구멍이 뿡뿡 뚫린 창호지를 떼어놓고 뽀얀 새 창호지를 붙이는 작업이다. 그냥 붙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코스모스 꽃이나 국화 꽃잎이나 빛깔 고운 단풍잎을 붙이는 멋과 여유를 함께 붙이는 것이다.
일터에서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을 돌아오신 아버지가 자신이 돌아왔음을 큰기침으로 알리는 곳이 바로 이 꽃잎을 붙여놓은 창호문 앞이고, 문살 총총한 방문에 어른거리는 달빛 그림자를 벗 삼아 울어대던 이름 모를 벌레들이 머물던 곳이 이 창호문 앞이고, 지나가던 바람이 잠시 머물며 바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곳도 이 창호문 앞이다. 깊은 겨울밤, 싸락 거리며 내리던 눈 내리는 소리에 님의 발자국 소린가 하여 가슴 두근거렸던 것도 다 이 창호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과 밖의 소통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어도 방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었던 그 시절에 예쁜 국화 꽃잎이 붙어있던 자리에 투명한 유리 조각을 끼워 넣기 시작하면서부터 안과 밖의 소통은 단절되기 시작했다. 작은 유리 조각이 점점 커져가더니 창호문 전체를 점령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중문, 삼중문으로 겹겹이 두르기 시작하더니 공기마저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공기마저 드나들지 못하니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들려줄 수 있겠는가?
바람 한 점 소리 한 점 드나들지 못한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스스로 대화를 단절하고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하면서 외롭다 하소연이고 고독하다 하소연한들 그 소리가 누구에게 들리겠는가? 밖에서 아무리 힘들다 소리친들 그 소리를 안에 있는 사람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가슴속의 대화를 잃어가는 세속(世俗)이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나가는 바람이 창호문 앞에 서서 들려주던 세상 이야기,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의 속삭임, 싸락눈이 내리면서 들려주던 저 머나먼 북극 나라 이야기가 그립고, 부모 몰래 창호문에 침 발라 구멍 뚫고 내다보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그립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그리운 것은 창호문에 찾아온 달빛 그림자가 들려주던 얘기가 그립다. 까까머리 첫사랑이 조심스럽게 부르던, 날 부르는 소리가 그립다.
그 그리움이 거실 창밖에 풍경을 매달게 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이게 제법 풍경 구실을 하여 밖의 소식을 안으로 전해 준다. 뎅그렁 뎅그런 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어느 땐 눈이 내린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름 모를 새도 앉아서 창밖의 소식을 전해주고 가니 덜 외로운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