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줌 인] 素服(소복) 입고 파티 가요, 드레스 코드가 '화이트'라서…

그래픽 디자이너 유인영(33)씨는 지난 10월 한 모임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새하얀 소복(素服)을 입고 온 사람, 어깨에 날개를 달고 온 사람, 낡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일상복을 입고 온 사람은 유씨 한 명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오늘 대체 왜들 이렇게 입고 왔느냐?"고 묻자 "초대장에 적힌 복장 규정 못 봤어?"란 답이 돌아왔다. 뒤늦게 초대장을 펴보니 '퍼니 화이트(funny white·우스운 흰색)'라고 적혀 있었다. 유씨는 "이렇게까지 다들 '드레스 코드'라는 걸 지키는지 미처 몰랐다"며 머쓱해했다.

드레스 코드(dress code), 우리말로는 복장 규정이다. 한동안 특정 외국계 회사에서 여는 연말 파티나 VIP 고객 모임,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에만 있었던 이 드레스 코드가 최근엔 일상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각종 연말 모임·송년회는 물론이고, 학부모 모임, 유치원 어린이 생일 파티에까지 번지는 추세. 그만큼 드레스 코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레스 코드를 지키는 건 '쑥스러운 행동' '유난한 멋 부리기' 정도로 치부됐고, 특히 40~50대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 출근 복장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지금은 얘기가 많이 달라졌다.

홍보대행사 '커뮤니크'의 신명 대표는 "3~4년 전만 해도 행사를 하면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요즘엔 안 지키는 사람을 찾는 게 훨씬 어렵다"면서 "특히 남자들 태도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다들 어떻게든 공부해서 맞춰 입고 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저씨도 맞추는 '드레스 코드'

제약회사 간부인 김형태(43)씨는 곧 다가올 연말 모임을 위해 의복의 역사와 형태를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샀다고 했다. "작년에 '블랙 타이' 차림을 요구하는 모임에 그냥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 매고 갔더니 다들 턱시도에 까만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왔더라고요. 부끄러워 혼났죠."

디렉터스 슈트(director's suit)는 넥타이·셔츠를 갖춘 정장 차림을 뜻하고, 블랙 타이(black tie)는 턱시도, 화이트 타이(white tie)는 연미복 차림을 뜻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런던 버킹엄 궁에 초대받았을 때 김행 대변인이 한복을 입었던 것도 '화이트 타이'라는 드레스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독일 명품 회사 '에스까다'의 류지연 이사는 "예전엔 이런 걸 열심히 맞춰 입을수록 '옷에 쓸데없이 목숨 건다'는 비아냥을 듣는 분위기였지만, 외국 크루즈 여행이나 결혼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요즘엔 '예의상 지켜줘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프랑스 '피에르파브르 더모코스메틱'의 최경애 지사장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의관 정제를 무척 강조했던 나라다. 한동안 이를 경시하고 무시하는 분위기였지만, 의복 교육보다 중요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센스'의 진검승부(眞劍勝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드레스 코드'에 단순히 맞추는 것을 넘어, '잘 입기' 경쟁이 붙는 경우도 많아졌다. 회사원 김선주(28)씨는 "'엘레강스 시크'라는 드레스 코드에 맞추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옷을 고르거나, '가면무도회' 콘셉트를 위해 밤새워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서 토끼 가면을 사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드레스 코드 자체도 점점 더 창의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최선을 다하세요(Do your best)' '남들은 모르는 당신(inside your soul)' '서울 최고의 멋쟁이(the best seoulite)'처럼 기발한 드레스 코드도 늘어나는 것. 이벤트 회사 문앤초이 문청자 대표는 "재미있는 드레스 코드를 낼수록 오는 사람도 제대로 놀 각오를 하고 오게 되는 것 같더라. 드레스 코드가 처음엔 남의 나라 문화였지만, 어느덧 우리만의 놀이 문화로도 진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