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막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은퇴 老人 돈줄도 막나
입력 : 2013.11.25 22:11
[수억원대 주택 자산 갖고도 담보 대출 어려워 논란]
월소득 없으면 대출 불가 원칙, 자산 많은 은퇴 노인에게 불리… 병원비·생활비 조달 어려워
금융위 "개인 부채 막는 역할… 섣불리 규제 완화하는 건 무리"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정모(68)씨는 지난달 집을 담보로 암에 걸린 아내의 병원비로 쓸 1억원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대출을 거절당했다.
정씨 소유 분당 서현동 아파트(101㎡)의 시세는 5억5000만원가량. 몇년 전 첫째 아들의 전세자금으로 1억원가량 대출을 받아 아직 원금을 다 못 갚긴 했지만, 담보에 여유가 많아 대출이 가능할 줄 알았다. 은행 창구 직원의 답은 이랬다. "담보는 충분하지만, 소득이 없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병원비가 급한데 재산이 제법 있는데도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게 황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다. 원래 DTI는 노무현 정부 시절, 주택대출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세를 잡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은퇴 노인들로 하여금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길을 봉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은퇴 노인들은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게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 당국과 은행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씨 소유 분당 서현동 아파트(101㎡)의 시세는 5억5000만원가량. 몇년 전 첫째 아들의 전세자금으로 1억원가량 대출을 받아 아직 원금을 다 못 갚긴 했지만, 담보에 여유가 많아 대출이 가능할 줄 알았다. 은행 창구 직원의 답은 이랬다. "담보는 충분하지만, 소득이 없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병원비가 급한데 재산이 제법 있는데도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게 황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다. 원래 DTI는 노무현 정부 시절, 주택대출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세를 잡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은퇴 노인들로 하여금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길을 봉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은퇴 노인들은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게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 당국과 은행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DTI 규제로 자산 있는 노인 현금 마련하기 어려워
월소득이 없지만 자기 명의 주택을 가진 노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소득이 없는 은퇴 노인을 위해 지난해 8월 DTI 규제를 일부 완화해 자산(주택)의 가치를 직전 연도 예금금리를 적용해 소득으로 인정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예를 들어 6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고, 작년 예금 금리가 3%였다면 1800만원이 소득으로 인정된다. 은퇴 노인이 이 소득을 근거로 대출을 받으면 서울(DTI 50%)에선 6900만원, 경기·인천(DTI 60%)에선 8300만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받은 대출금은 대출가능금액에서 제외한다. 문제는 은퇴 노인들이 자녀의 결혼식 자금이나 전세금 지원, 병원비 등의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퇴직금 등 현금자산)을 이미 소진하거나, 1억~2억원은 대출받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퇴 노인들이 병원비나 생활자금 용도로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 "소득 없는 은퇴 노인에게 연체 위험 커"
서울 송파구에 9억원짜리 집을 보유하고 있는 은퇴한 윤모(64)씨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은퇴 전에 집을 담보로 2억원가량 대출받은 게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받지 못했다. 윤씨는 "멀쩡하게 재산(집)이 있어도 은행이 늙었다고 대출을 해 주지 않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도 할 말은 있다. A은행의 개인대출 담당 직원은 "1억~2억원씩 대출하면 한 달 이자만 40만~80만원씩 되는데,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게 대출하면 연체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은퇴 노인들의 자산 구조가 지나치게 부동산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 7월 노인(만 60~86세) 26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년층의 전체 자산 중 91.6%가 주택과 다른 부동산에 묶여 있었다.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보니 정작 현금이 필요할 때는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 4~5년간 집값이 30~40%씩 폭락한 지역이 많아 집을 매각하는 방안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현재로선 은퇴 노인들이 집을 현금화하려면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집을 담보로 맡기고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 제도)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집을 자식에게 물려 줘야 한다는 노인들의 정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주택연금 가입자는 월평균 500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노인 DTI 규제 완화, 위험 부담 높아 의견 분분
금융 당국과 전문가들도 은퇴 노인을 대상으로 한 DTI 규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자산이 있는 노인들이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게 DTI 규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고, 자신의 책임하에 빚을 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DTI 규제는 이자 상환 능력이 없는 개인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어 섣불리 DTI 규제를 완화하기는 어렵다"며 "노인들의 경우 주택연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게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 규제
금융기관이 대출받는 사람의 소득에 따라 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매달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월 소득의 50~60%를 초과하지 못하게 규제되고 있다. DTI 규제가 도입된 후 아무리 비싼 집을 갖고 있어도 원칙적으로 월소득이 없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월소득이 없지만 자기 명의 주택을 가진 노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소득이 없는 은퇴 노인을 위해 지난해 8월 DTI 규제를 일부 완화해 자산(주택)의 가치를 직전 연도 예금금리를 적용해 소득으로 인정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예를 들어 6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고, 작년 예금 금리가 3%였다면 1800만원이 소득으로 인정된다. 은퇴 노인이 이 소득을 근거로 대출을 받으면 서울(DTI 50%)에선 6900만원, 경기·인천(DTI 60%)에선 8300만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받은 대출금은 대출가능금액에서 제외한다. 문제는 은퇴 노인들이 자녀의 결혼식 자금이나 전세금 지원, 병원비 등의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융자산(퇴직금 등 현금자산)을 이미 소진하거나, 1억~2억원은 대출받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퇴 노인들이 병원비나 생활자금 용도로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 "소득 없는 은퇴 노인에게 연체 위험 커"
서울 송파구에 9억원짜리 집을 보유하고 있는 은퇴한 윤모(64)씨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은퇴 전에 집을 담보로 2억원가량 대출받은 게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받지 못했다. 윤씨는 "멀쩡하게 재산(집)이 있어도 은행이 늙었다고 대출을 해 주지 않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도 할 말은 있다. A은행의 개인대출 담당 직원은 "1억~2억원씩 대출하면 한 달 이자만 40만~80만원씩 되는데,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게 대출하면 연체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은퇴 노인들의 자산 구조가 지나치게 부동산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 7월 노인(만 60~86세) 26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년층의 전체 자산 중 91.6%가 주택과 다른 부동산에 묶여 있었다.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보니 정작 현금이 필요할 때는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 4~5년간 집값이 30~40%씩 폭락한 지역이 많아 집을 매각하는 방안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현재로선 은퇴 노인들이 집을 현금화하려면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집을 담보로 맡기고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 제도)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집을 자식에게 물려 줘야 한다는 노인들의 정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주택연금 가입자는 월평균 500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노인 DTI 규제 완화, 위험 부담 높아 의견 분분
금융 당국과 전문가들도 은퇴 노인을 대상으로 한 DTI 규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자산이 있는 노인들이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게 DTI 규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고, 자신의 책임하에 빚을 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DTI 규제는 이자 상환 능력이 없는 개인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어 섣불리 DTI 규제를 완화하기는 어렵다"며 "노인들의 경우 주택연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게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 규제
금융기관이 대출받는 사람의 소득에 따라 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매달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월 소득의 50~60%를 초과하지 못하게 규제되고 있다. DTI 규제가 도입된 후 아무리 비싼 집을 갖고 있어도 원칙적으로 월소득이 없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