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7 09:13

JOY OF LIFE

남자라면 한 번쯤 펜싱 검을 든 마에스트로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칼의 우아한 곡선과 그 곡선을 그리는 날렵한 몸짓…. 심신을 단련하는 것은 물론 멋과 품위까지 갖춘 펜싱은 ‘신사의 스포츠’란 수식 그 자체다.

고대 무사들의 결투에서 기원한 펜싱. 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기본 원리인 이 스포츠는 칼싸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종종 검도와 비견되곤 하는데, 동양의 검도가 내적인 기(氣)를 중심으로 한다면 서양의 펜싱은 외적인 스피드를 중심으로 한다. 정돈된 자세로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므로 에너지 소모량이 매우 커 군살 제거는 물론 체력 향상에 탁월하다. 혹자는 펜싱을 가리켜 손에 칼을 쥐고 체스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매 순간 집중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판단해야 하므로 순발력을 기르는 데도 효과적이다.

전 국가대표 펜싱 감독인 윤남진 YFC펜싱클럽 대표는 “뭐니 뭐니 해도 남성미를 드러낼 수 있는 운동”이라고 펜싱의 매력을 강조했다. “나이가 들수록 다리의 힘은 빠지고 탄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남성의 힘은 다리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근력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 펜싱은 하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운동이다. 허벅지 등 하체 근력 향상에 매우 효과적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6개월 정도 꾸준히 펜싱을 하다 보면 하체 근력이 강해진 것을 실감할 수 있다고.

펜싱 국가대표 신아람 선수의 주 종목으로 널리 알려진 에페의 경우 중장년층도 쉽게 공략할 수 있다. 윤남진 대표는 “무릎이나 발목이 좋지 않다면 펜싱 종목 중 에페를 권한다. 플뢰레나 사브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피드가 덜 요구되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펜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문턱이 낮은 운동이다. “규칙이 복잡할 것 같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는 데 전혀 어렵지 않다. 막상 몸으로 해보면 쉽다. 또 체력이 약한 ‘운동 초보’라 하더라도 기초 운동을 병행하면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펜싱이다”라고 윤 대표는 말한다.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 또한 펜싱에 대한 오해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펜싱용 장비는 턱없이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선수용 장비는 200만 원을 호가하나 일반의 경우 검을 비롯한 전체 장비가 보통 60~70만 원 선이다. 한번 마련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런던올림픽 이후 펜싱을 배우려는 이들이 부쩍 늘긴 했지만 아직 펜싱은 ‘희귀 종목’에 가깝다. 서울 시내만 해도 펜싱을 배울 만한 곳이 10곳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펜싱 같은, 남들이 하지 않는 나만의 스포츠를 하나쯤 갖는 것도 멋진 일 아닐까.


TIPS 펜싱의 종류에는 플뢰레(fleuret)·에페(epee)·사브르(sabre)가 있다. 펜싱의 기초가 되는 플뢰레는 찌르기 경기다. 목 이하 다리 위가 표적이다. 에페는 몸 전체가 유효면이다. 플뢰레와 같이 찌르기만 가능하다. 찌르는 시간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승점을 얻게 되므로 상대방보다 먼저 찌르는 게 관건이다. 사브르는 베기와 찌르기를 병용할 수 있다. 다리를 제외한 전신이 유효면이다.


[INTERVIEW]
펜싱에 빠진 남자

민병도 신세계백화점 상품본부 잡화팀 부장

“토·일요일에는 2시간씩 꼬박꼬박 펜싱을 한다. 주중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펜싱을 한 후부터는 업무 집중도도 훨씬 높아졌다.”

민병도 신세계백화점 상품본부 잡화팀 부장
민병도(45) 부장이 펜싱을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이다. 워낙 여러 운동을 즐기던 그의 주 특기는 검도. 4~5년간 검도로 심신을 다져온 그가 펜싱으로 눈길을 돌린 것은 발목과 무릎이 부쩍 약해지면서부터다. “무릎관절증이 심해지면서 검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 펜싱에 눈이 갔다. 예전부터 펜싱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집 근처 펜싱클럽을 찾아 행동에 옮기게 됐다.”

그런 민 부장의 모습을 지켜보던 초등생 둘째 딸도 덩달아 펜싱에 재미를 붙여 지금은 주말이면 부녀가 함께 펜싱클럽을 찾는다. 하루 2시간 정도 할애하는 것이니 부담이 크진 않다고. “재밌다. 숙련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타 운동에 비해 펜싱은 기본 자세만 익히면 바로 시합이 가능해 재미를 느끼기 쉬운 것 같다. 상대와 겨루다 보면 기술 익히기도 훨씬 수월하다.” 민 부장은 ‘베는 운동’인 검도와는 다른 ‘찌르는 운동’인 펜싱만의 재미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내 생각에 검도가 선(線)으로 표현하는 운동이라면 펜싱은 점(點)으로 표현하는 운동이다. 그렇다 보니 펜싱이 좀 더 샤프한 느낌이 강하다.”

더욱이 그가 택한 에페 종목은 약해진 발목과 무릎에 좋은 약이 되기도 했다. 물리치료와 펜싱 등의 운동을 겸하면서 무릎을 서서히 회복시킨 것. “여러 운동을 했지만 운동마다 쓰는 근육이 달라서인지 처음 시합 때는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만큼 하체 힘이 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2년간 꾸준히 펜싱을 하다 보니 어느새 허벅지가 굉장히 단단해졌다. 발목과 무릎도 많이 좋아졌다.”

‘서울특별시협회장배 동호인 남·녀 종별 펜싱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에페 단체전 우승, 개인전 3등 수상 경력도 갖고 있는 그는 펜싱에 특별한 목표는 없다고. 그냥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망설이지 말고 경험해 보라. 일단 한번 시작하면 그 재미에 흠뻑 빠져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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