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7 09:14

PEOPLE

바쁘고 힘든 한 해도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올 한 해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나?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당신의 2013년을 설명할 한 가지 키워드를 꼽는다면?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대표… 變革·探究(변혁·탐구)

2010년부터 파나소닉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노운하(53) 대표. 스스로를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노 대표는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든 주인처럼 나름의 원리·원칙을 고집스레 고수해온 것”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그런 그의 2013년 키워드는 ‘변혁과 탐구’다. 한 해 동안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공부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대표
© 이경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 시장이 급변했고, 디스플레이 및 영상 관련 상품도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다.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내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 해 동안 그가 조찬 세미나나 CEO 교육 프로그램 등에 부쩍 활발히 참여한 이유다.

2013년의 ‘업무 성적’에 대해 “당초 계획을 달성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평하는 노 대표. 그는 가장 만족스런 일로 파나소닉코리아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언급한다. 파나소닉코리아는 2007년부터 매년 2회 아동(청소년) 복지시설 15곳 내외를 선정해 파나소닉 제품과 도서 및 생필품을 후원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을 꾸준히 확대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힐링이 된다. 매번 시설을 방문해 원장님과 원생들을 만나는데, 우리의 작은 정성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반갑게 맞아주는 이웃의 따뜻함에 매료되어 만남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라고. 총 13회를 진행하는 동안 서울·경기·인천의 200~300곳 시설을 거의 다 방문하다시피 한 파나소닉코리아는 올 연말 서울아동복지협회의 추천으로 서울특별시장 표창까지 받게 됐다.

“기부 자체가 아니라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에게 카메라 한 대를 건넨다는 것은 그만큼의 꿈을 심어주는 것, 그것에 보람을 느낀다. 꿈을 꾸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줌으로써 자신이 받은 도움을 이후 후배들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환원이 아닐까.” 올해 파나소닉코리아는 대학생 홍보대사에 장학금 전달을 비롯해 청소년환경사진공모전 후원, 자선음악회 지원 등 활동의 비중을 더욱 확대했다.

“우리 기업의 첫 번째 목표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철학이지만 동시에 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혼자 잘사는 건 의미가 없다. 사회와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다.”

이런 노 대표의 철학은 ‘변혁과 탐구’라는 한 해 동안의 과제 속에 상당 부분 녹아 있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큰 보탬이 되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요즈음 내 화두다”는 노 대표는 CSR(사회적 책임)에서 CSV(공유가치 창출)로 전환하기 위한 탐구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2013년이 탐구의 해였다면 다가올 2014년은 발로 뛰는 ‘실천’의 해여야 한다. 중지를 모은 경영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변화를 선도해가는 기업으로 더욱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또한 그는 ‘가족친화경영’의 대표주자답게 직원들과의 유대도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직원을 육성하는 일도 내가 해야 할 하나의 업무다’는 취임 초 마음가짐을 반드시 지켜나가겠다는 것.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준 우리 임직원 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연말에 회포를 푸는 자리를 마련해 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이재훈 릴라릴라 대표… 信賴(신뢰)

2011년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기능성 컴포트 슈즈 멀티숍 릴라릴라(Rila Rila)의 이재훈(40) 대표는 자신의 2013년을 ‘신뢰의 원년’으로 정리한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업을 안착시키고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해였다. 기존 6개 브랜드에서 미국, 이탈리아 브랜드 2개를 추가로 선보이게 됐고 매장도 8개나 늘었다. 업계 바이어들의 입점 문의나 여러 파트너사의 러브콜도 잇따랐다.” 짧은 시간에 적잖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재훈 릴라릴라 대표
© 장은주
처음 사업을 준비하던 무렵 이 대표는 트렌디한 디자인의 패션화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뉴욕 FIT에서 패션 산업을 공부한 것도 그 때문. 하지만 공부하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이미 포화 상태인 일반 슈즈 시장이 아닌 기능성 슈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여겼다.

“어디까지나 ‘경영자적 마인드’로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 분야는 나와 무척 잘 맞다. 운동을 하다 다쳐 재활운동을 오래 한 경험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기능성 슈즈가 참 편하고 좋다.” 정장을 입은 그의 두 발에는 릴라릴라에서 선보이는 일본 브랜드 던롭의 갈색 컴포트화가 신겨져 있다.

신발뿐 아니라 패션 산업 전반에 걸쳐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이 대표는 올해가 가기 전에 기능성 지팡이, 양말, 가방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나아가 2015년경에는 의류까지 포함한 대형 매장으로의 확대를 기약하고 있다.

굳이 일이 아니라 해도 2013년은 이 대표에게 각별한 해다. ‘릴라릴라’라는 이름을 내걸고 멀티숍 콘셉트를 만들어가던 2012년에는 과도한 업무 탓인지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나는 워낙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겪고 난 후부터는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매우 두려워졌다. 회의실에만 들어가도 숨이 막혀 곧 죽을 것같이 힘들었다.” 올 한 해 그는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느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병원의 힘을 빌리기보다 삶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혼자만의 노력을 거듭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가량 운동과 명상을 했다. 가능한 한 퇴근도 앞당기려고 노력했다. “과거에는 매일 업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주말에도 일 생각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그런데 요즘은 4시까지만 일하고 이후엔 다른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1년여간 노력을 거듭했고 올 상반기부터 상태가 좀 호전됐다는 이 대표. 그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한다. “난관 속에서도 일을 놓지 않고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는 것. 아울러 그는 “요즘 들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사업이 안정될수록 중용을 지켜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전한다.

릴라릴라는 현재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3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유통 매장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신뢰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대표. 그러기 위해선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다스리는 데 많은 품을 들이겠다고 그는 다짐한다.


이규현 갤러리 메타포 대표… 召命意識(소명의식)

종로구 통의동에 자리한 아담한 전시 공간 ‘갤러리 메타포’. 5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이규현(62) 대표는 ‘꽃은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다’는 잠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3년은 미술계에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넘어야 할 힘든 산이 없다면 인생의 맛은 그만큼 덜하지 않겠나.” 힘들었기에 자신을 좀 더 충실히 돌아볼 수 있었던 한 해,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이 대표는 멘디니와의 만남을 꼽는다.

이규현 갤러리 메타포 대표
© 이경민
이 대표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만난 건 지난 10월. 국민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OCD) 국제 컨퍼런스를 위해 그가 방한했을 당시다. “악수하고 인사 한두 마디 나눈 게 전부”였지만 여든둘의 거장이 남긴 감흥은 적지 않았다.

“나도 내 나름의 좌표를 가진 사람이지만 여든이 넘은 ‘보물 디자이너’의 모습,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런 이 대표의 책상에는 밝은 노란색 표지의 신간 <알레산드로 멘디니>(미니멈)가 놓여 있다.

알려진 대로 멘디니는 50대 후반에 비로소 디자인계에 입문해 주 전공인 건축은 물론, 다양한 생활 소품을 디자인해왔다. 우리에겐 여인이 팔을 치켜드는 모양의 와인따개 ‘안나 G‘ 디자인으로 특히 친숙하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멘디니만큼 단단하고 밀도 있는 거장 작가가 없는 것 같다. 국내 미술 환경이 그만큼 부족한 탓이다. 이제는 기성 세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그 몫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 밝혔다.

스스로를 ‘화상(畵商)’으로 칭하는 이 대표가 업계에 뛰어든 건 약 15년 전. 미술품 딜러 생활을 거쳐 5년 전 갤러리 메타포의 수장이 된 후 그는 스스로 젊은 작가들의 버팀목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와 관객에게 힘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더라. 어느새 어떤 사명감, 소명의식이 내게 생겨버린 것 같다.”

전시를 넘어 미술, 건축, 음악 등이 만나는 복합적인 에너지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그는 “내가 메신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여태껏 경험한 것을 활용해 작가와 관객을 매개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몇 달 전 복막염 수술 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생각 때문이다.

인생을 애써 계획하며 살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이 대표는 재차 멘디니를 언급한다. “너의 삶을 증언하라”는 멘디니의 말이 자신에게 해주고픈 한마디라고. “멘디니의 말처럼 내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것을 이제 서서히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