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의 It Style] 화장하는 少女, 그 자체가 아트

"그렇다. 난 일종의 확신범이다. 기존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내 신념만을 믿는다. 대중과 세상의 움직임엔 아랑곳없이 난 오랫동안 그저 내 안의 우물만을 바라봤다. 내가 일본에서 제일 비싼 작가가 된 건, 결국 그 덕분일 거다."

일본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41·村上隆·사진)는 2002년 루이비통과 협업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2008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된 작가다. 같은 해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그의 작품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약 1500만달러(170억원)에 팔렸고, 2010년엔 프랑스 베르사유 궁(宮) 내부에 작품을 전시해 큰 화제를 모았다.

무라카미가 이번엔 화장품 회사 '슈에무라'와 손잡고 새로운 협업(collaboration) 작품을 냈다. 화장품 패키지와 단편 만화영화를 제작한 것. 이 비싼 작가가 또 기업과 손을 잡다니, 그는 상업적인 길만을 골라 딛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무라카미는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어차피 현대미술이란 시장을 움직이는 힘과 논리를 이해하지 않고선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 역시 이걸 이해하는 데 꽤 여러 해가 걸렸다. 남들은 그걸 쉽게 '상업적'이라는 단어로 몰아붙이겠지만, 난 그저 이 복잡한 세계 속에서 퍼즐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기업과 자꾸 손잡다 보면 작가로서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장애물이 생기지 않나?

"이미지 걱정은 안 되는데, 협업하다 보면 자꾸 여기에 너무 몰입해서 다른 일을 못하는 게 문제다! 후후. 이번에도 내가 빠져서 판을 크게 벌였다. 애니메이션과 화장품이란 영역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고, 결국 단편영화까지 만들게 됐다."

―화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특히 끌렸다고 들었다.

"소녀가 몸속 깊이 감춰진 관능(sexuality)에 눈을 뜨는 시기에 항상 관심이 많다. 소년과 달리 소녀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예민하게 느끼고, 자신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놀라운 존재라고 본다. 그런 소녀가 화장하면서 성숙한 여인이 되고 더욱 강력한 존재가 된다는 것에 매혹됐다. 그 과정 자체를 또 하나의 '아트'로 격상시키고 싶었다."

―당신은 항상 일본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번에 도움을 준 작품이 있다면?

"'요술공주 샐리'나 '마법소녀 라라벨', '천사 소녀 새로미' 같은 만화들. 난 원래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열광해 온 오타쿠다. '울트라맨' 시리즈나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이야기에 매료됐다. 이들 작품에 녹아 있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슬픔과 울분에 공감하고 전율하며 나 역시 성장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대중문화에 집착하는 이유다."

―이번 당신의 작품을 보면 분홍 공주와 검정 공주가 등장한다. 어떤 뜻일까.

"여성 안에서 충돌하는 음(陰)과 양(陽)의 이미지를 각각 형상화한 것이다. 소녀란 자기 안의 음양, 욕망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성장하는 존재라고 봤다. 개인적으로는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오랜 이상형이기도 했고."

―오랫동안 납작한 꽃송이 그림으로 대표되는 수퍼플랫(superflat·超平面)이라는 키워드로 작업하면서 현대 문화의 경박함을 지적해 왔다. 새로 주목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스피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를 통해 형성되는 오타쿠 문화에 관심이 많다. 예전의 우린 책을 나눠 읽거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모임을 가지면서 소통했지만, 요즘 오타쿠 문화는 SNS를 통해 또다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행조차 여기에 맞춰 뛰어가는 형국이다. 이 속도감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날카롭게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