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힐링, 힐링 하는데… 머릿속 채우지 않고 세탁기부터 돌려서야"

"어떻게 그 책을 쓰게 됐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연히 썼다'고 둘러댔습니다. 이제 진짜 속마음을 얘기하자면… '나는 미술사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9권 출간돼 3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64)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전 문화재청장)가 28일 오후 3시 명지대 방목학술정보관에서 정년퇴임 기념 강연을 한다. 내년 2월 정년을 맞는 그는 "석좌교수가 되면서 연구실과 옆방 서고를 그대로 쓰게 된다"며 "월급이 좀 줄어드는 것 말고는 사실 바뀌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27일 신간 '한국미술사 강의 3' '명작순례'(눌와)의 출간을 계기로 기자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다음 날 강연에서 할 말을 미리 전했다. "저는 정상적인 경로로 학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까지 14년, 직장 생활 8년, '백수 생활'(미술평론가) 8년을 거쳤습니다. 이렇게 살아 놓고 마치 상아탑에서 고고하게 나가는 사람처럼 제자들에게 정년 기념 논총이나 만들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1967년 서울대 미학과에 들어간 그는 '학문의 길을 지키면서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길'을 고민했다. 3선개헌과 민청학련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기정학과 투옥을 겪었다. 이후 민중미술 평론과 서양미술사 강사를 하다가 전기(傳記)로 풀어쓴 한국미술사인 '화인열전'을 썼다. 1993년 첫 책이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겼다.

그는'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를 대중화한다'는 목표로 시종일관했다고 했다. 유 교수는 미술사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라" "실제 작품에서 받은 예술적 감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번에 펴낸 '명작순례'는 "대중이 좋은 안목으로 우리 미술품을 볼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쓴 친절한 안내서"라고 설명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인문서를 예전만큼 사 보지 않아 걱정스럽습니다. 서점에 가면 그저 '힐링' '힐링' 하는데, 아니, 머릿속에 뭘 집어넣지도 않고 세탁기부터 돌려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