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5 新중년] 사무실·컴퓨터 등 무료 제공해 은퇴자 지원… '창업 인큐베이터' 통해 年 400여 기업 탄생

"두고 보십시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인큐베이터(초창기 기업 지원 시설)가 부럽지 않은 날이 올 겁니다."(박순탁 매니저)

지난 25일 경기도 수원시 영동에 있는 '시니어비즈플라자'. 방 안으로 들어가니 독서실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30석가량 칸막이 책상엔 각종 책과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다. 책상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젊은 사람은 없다. 모두 6075 신중년이다. 창업에 도전하는 '사장님'들이기도 하다.

수원 시니어비즈플라자는 은퇴자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중소기업청은 2011년 3월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제휴해 시·도별로 시니어비즈플라자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13곳이 생겼다. 이 가운데 경기 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수원플라자는 지금까지 1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그중 140명이 회사를 창업했다. 박순탁 플라자 매니저는 "어르신들의 창업 열기가 무척 뜨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중년이 창업으로 제2전성기를 열겠다는 시도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 잘되면 제1전성기 못지않겠지만, 실패할 경우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못지않은 열정의 신중년들

천경천(61)씨는 수원플라자가 낳은 성공 모델 중 하나다. 그는 수원 시내 공원을 돌면서 사진을 초상화로 바꿔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좌판을 벌인 뒤, 손님이 오면 우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노트북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뒤 출력하면 사진이 아닌 유화 느낌의 초상화가 출력된다. 손님이 원하는 크기로 뽑아낼 수 있으며, 액자 프레임에 끼워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3분도 걸리지 않는다. 가격은 크기별로 3만~100만원이다.

천씨는 "아내와 조수 한 명까지 셋이서 이틀에 한 번꼴로 일하면서 한 달 500만원 정도를 번다"며 "조수 월급을 떼어 주고 나도 부부 둘이 살아가기에 충분한 금액이 남는다"고 했다.

한상택(74)씨도 수원플라자를 통해 '한과 업체'를 창업했다. 한상택씨는 앞으로 괜찮은 식품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이다. 그는 "한과 수출도 해보고 싶다"며 "먹기 편하도록 개별 포장지를 개발해 특허까지 취득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갓사랑'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뚜렷한 성공 모델 아직 안 나와

전국 시니어플라자 13곳은 대부분 비슷한 시스템이다. 신중년이 찾아와 창업을 문의하면 회원 가입을 받은 후 창업 관련 교육을 해준다. 또 공용 사무 공간과 컴퓨터실을 제공하고, 이곳을 주소로 사업자 등록도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 '대박' 성공 스토리는 없다. 2011년 처음 문을 열어, 이곳을 통해 신중년들이 창업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창업 컨설팅 서비스와 함께 수시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 시스템 도입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노인이 뭘 하겠어'란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시니어플라자에 입주해서 창업한 신용남(69)씨는 "기술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개발자가 늙었다는 이유로 투자는 주저한다"고 말했다. 실제 신씨는 자체 개발한 부피 조절 여행용 가방에 대해 몇 차례 특허 매입을 타진받았지만, 투자 의뢰는 받지 못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뜻이 맞는 신중년이 여럿 모여 각자 소액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매칭 시스템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