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9 00:03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매표소 설계한 건축가 조신형

건축가 조신형씨 사진
건축가 조신형
요즘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안쪽에서 자그만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매표소다. 연면적 28.21㎡(약 8평)의 작은 건물이지만, 고궁 매표소 중 처음으로 건축가가 참여한 작품이다. 게다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길 건너 맞은편에 들어서면서, 이 위치는 지리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안내소의 설계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조신형(40·초힐로건축플러스도시 대표·사진)씨다.

"세종로 1-1번지, 대한민국의 중심에 들어서는 상징적인 건물이라 사명감이 큽니다." 최근 만난 조씨는 "안내소가 '전통'을 상징하는 경복궁과 '현대'를 보여주는 현대미술관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완충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이라고 설명했다.

안내소는 회색 철판 지붕에, 단풍나무로 외벽을 마감한 아담한 건물이다. "워낙 큰 문화유산을 두고 있기에 자신의 존재감은 한껏 낮춘 디자인"이란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빛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해지는 건물이다. 비밀은 지붕에 있다. 조씨는 태양의 고도를 계산해 지붕에 81개의 구멍을 입체적으로 뚫었다. 1년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 고도에 따라 구멍을 통과하는 빛의 양이 변한다. 지붕의 모든 구멍으로 빛이 통과해 비치는 건, 1년 중 동지와 하지 딱 두 날의 정오밖에 없다. 조씨는 "원안에선 기하학적인 구조물 형태로 디자인했는데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디자인을 변경했다"며 "차선으로 빛을 이용해 기하학적이면서도 우리 전통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매표소 조감도. 지붕에 81개 구멍을 뚫었다. 매표소 왼쪽이 경복궁 동쪽 입구. 그 가운데로 보이는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매표소 조감도. 지붕에 81개 구멍을 뚫었다. 매표소 왼쪽이 경복궁 동쪽 입구. 그 가운데로 보이는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초힐로건축플러스도시 제공
조씨는 '노마드 건축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태어난 그는 경제인인 아버지를 따라 홍콩·파리·뉴욕·런던·보스턴 등에서 12년을 보냈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나와, 영국 AA스쿨,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하버드대 시절엔 재학생 최초로 캠퍼스 내에 파빌리온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동안 주로 해외에서 작업한 탓에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하다. 프레젠테이션 때 낯선 한자식 건축 용어를 막힘 없이 쓰려고 한국어 과외까지 받았을 정도로 이번 프로젝트에 열을 다했다. 조씨는 "스스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묻고, 공부하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한국 공공 프로젝트의 비효율성을 느꼈다고 한다.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의 심의를 열 번 넘게 거쳐야 했고, 그 탓에 올 초 시작됐던 디자인이 최근에야 확정됐다. 조씨는 "최선을 위한 협의라는 취지는 알지만 절차적으로 불필요한 소모가 많은 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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