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게임, 마치 인생과 같아… 탈락해도 다음 기회 또 옵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원통을 가로지르고, 줄에 매달려 돌진해오는 추를 요리조리 피해 다리를 건넌다. 남녀 불문 해괴한 자세로 굴러 떨어지고, 온몸이 물에 흠뻑 젖는다. 재난 영화가 아니다. 시즌1(1999~2003년)과 시즌2(2009년~)를 합해 총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국내 최장수 '장애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KBS '출발 드림팀' 한 장면이다. 이 장애물들은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김기륜(51) 작가다.

지난 7월 '출발드림팀' 제작진은 김 작가가 출연해 장애물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장애물의 아버지'라는 자막을 헌사처럼 내보냈다. 김 작가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가입 작가 중 이렇게 오래 장애물 게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장애물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매주 1개 이상 '신상품(?)'이 개발되는 셈이다. '4단 회전 바람개비' '2단 회전 도깨비 방망이' '공포의 흔들다리' 등 모양도 이름도 기상천외하다. "그냥 노트에 쓱쓱 그리는 거죠. 대학에서 기계공학 전공했거든요. 이런 노트만 집에 30권 정도 돼요." 한때 '김기륜 노트만 훔쳐도 놀이공원 몇 개는 짓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밤새 아이디어를 짜내다 보면 뇌가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듯 아이템을 툭 던져놓더라"며 "이젠 이골이 나 1~2시간이면 장애물 대여섯 개는 금방 만들어낸다"고 했다. 시즌1의 '인디아나존스'는 영화 보다가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굴러 떨어지는 지름 2.5m, 무게 30㎏의 '스펀지 돌멩이'보다 빨리 달려 점점 좁아지는 스티로폼 벽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이다. 제작진 회의에서 결정된 아이템은 일주일 뒤 실물로 태어난다.

그가 본격적으로 '게임 예능'에 뛰어든 건 1992년 MBC '일요 큰잔치'부터다. 높이 10m짜리 '다층 미로' 세트를 만들어 출연자가 매층마다 배치된 장애물을 피해 지붕까지 올라가도록 한 게임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후 KBS '가족오락관'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위험한 초대', SBS '슈퍼 바이킹' '보야르 원정대' 등에서 장애물 감(感)을 갈고 닦았다. '컨베이어 벨트 책상(KBS '여걸파이브')' '플라잉 체어(KBS '위험한 초대')' 등의 예능 소품은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장애물 경기에서 인생을 본다"고 했다. 그의 장애물 설계는 1단계 서비스, 2단계 맛보기, 3단계 헤매기, 4단계 정신 혼미, 5단계 아쉬움으로 이뤄진다. 탈락하면 일반인·연예인 할 것 없이 '물맛'을 봐야 한다. "겨울엔 추우니깐 '깍두기 밭'(스티로폼 조각이 쌓여 있는 연못)에 빠뜨리죠." 제일 중요한 건 장애물에서 떨어진 탈락 직후다. "출연진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경기 도중 탈락해 물에 빠지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그냥 푹 잠기라는 거죠. 빨리 물 밖으로 나오려고 서두르면 부상을 당할 수 있어요. 기회는 다음에도 있잖아요."

그는 "'장애물 예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출발드림팀' 시청률이 한창때보다 낮아졌지만, 몸쓰는 예능은 언제나 통합니다. 같이 뛰고 싶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