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 모던보이·모던걸… 제 노래 듣는다면 흐뭇해 하시겠죠"

1930년대 우리 가요에 빠져 박사 학위까지 받은 연구자가 당시 노래를 직접 리메이크한 앨범을 발표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교양기초교육원 장유정(41·사진) 교수가 발표한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이다.

무용가 최승희가 부른 '이태리의 정원', 작곡가로 유명한 손목인이 직접 부른 '리라꽃은 피건만',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 이난영의 '바다의 꿈' 등 총 10곡이 담긴 이 앨범에서 그는 프로 못지않은 보컬 솜씨를 선보인다.

최근 기자와 만난 장유정은 "1930년대 대중음악은 서양 재즈 리듬까지 직수입해 끌어안았다. 구슬픈 트로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대중음악의 뿌리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밝고 풍요롭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2004년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대중가요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장유정은 우리 대중음악 평단의 흔치 않은 옛 가요 연구자다. 그러나 원래 그의 꿈은 가수. 여고 시절 라디오 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우리들의 가요제' 상반기 결선에서 우승했던 그는 대학가요제에서 3년 내리 예선 탈락한 뒤에야 "열정만으론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노래에 대한 열정의 다른 방편이 연구였다. "우리 대중음악 뿌리가 모래성이 되지 않도록 실증(實證)으로 받쳐주고, 전래 구비문학과 지금 대중음악의 맥을 학문으로 잇는다는 자부심! 하지만 그와 별도로 가슴속 불이 꺼지지가 않았죠."

작년 5월부터 순서대로 낸 디지털 싱글 아홉 곡과 보너스 트랙으로 택한 고복수 원곡의 '사막의 한'까지 열 곡을 정규 음반에 담았다. 산업디자이너 방재기 전 단국대 교수가 앨범 재킷을 제작했고, 그 시절 '모단걸'들의 분 내음이 풍겨날 듯한 속지 그림은 펜그림으로 유명한 아버지 장봉기 화백이 그려줬고, 동료 교수와 지인들이 편곡을 맡았다.

그러나 장씨는 빛나는 원석을 준 옛 음악인들의 공(功)을 으뜸으로 쳤다. "지금 K팝의 족보를 올라가면 만나는 분들이죠. 부족한 것 많은 앨범이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신 선생님들은 하늘에서 '너만큼은 우리를 잊지 않는구나'하고 기특해하고 계시지 않을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