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방한모자에 감추어진 머리카락이 하얀 어르신 한 분이 일산호수공원의 얼음 위에서 꽃이 진 연꽃의 연밥을 향하여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몰입의 순간이다. 무아지경에 이른 순간이다. 추위도 아랑곳없다. 얼음 위로 고개를 내민 연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어떠한 구도로 프레임을 채울까? 카메라의 앵글은 어떻게 하여야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카메라 위치는 어떤 쪽이 좋을까? 햇빛은 어느 방향에서 비취고 있나? 연밥이 얼음 위에 낮게 서 있어서 어르신은 망설이지 않고 차가운 얼음 위에 바짝 엎드렸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며 곱게 피었던 백련, 홍련, 연분홍의 연꽃을 마음에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추억을 되새겨 보듯이 말이다. 고운 연꽃이 지고 벌집 같은 연밥의 칸 칸에 씨앗이 속속들이 들어차면 또 다른 신비감을 주기도 한다. 어르신은 씨앗이 빠져나간 연밥을 찍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황혼기에 접어든 당신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르신은 은퇴 후에 사진을 배웠다. 시간이 날 때면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한다. 동료들과 어울려 사진 촬영하기에 좋은 곳도 찾아 나선다. 건강이 다소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건강해졌다. 사진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마음도 정신도 맑고 젊어졌다.

사진을 위하여 산과 들로 걸어 다니는 바람에 신체적 건강도 되찾았고 동호인들과 어울려 사진 활동을 하기에 사회적 건강도 좋아졌다. 손주를 비롯하여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즐거움도 있다. 뒤늦게 배운 사진 취미가 어르신의 노후생활 중심이 되었다. 하루가 너무도 빨리 간다.

장수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 노후 시간은 8만 시간을 넘나든다. 더 길어질 전망이기도 하다. 그냥 놀면서 죽음만을 기다리지 않고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보람되고 즐거운 노후시간을 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나와 같이 사진을 하는, 한참 연배인 여든에 가까운 연세의 어르신이다.

젊은이 이상으로 사진에 열중이다. 활기차게 노후를 사진으로 즐기시는 모습에 존경이 간다. 노후를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일의 하나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이지 싶다. 이 사진을 통하여 나의 노후 여가생활을 그려본다. 노후를 새롭게 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