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밥

언젠가 친구들과 여행길에 나섰다가 강원도 정선에 들렀다. 정선에 들르면 곤드레밥은 꼭 먹고 오라고 하기에 정선에서 제일 곤드레밥을 잘한다는 맛집에 몰려갔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허름한 집에서 겨우 방 한 귀퉁이에 자리를 차지하고는 곤드레밥을 기다렸는데,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곤드레밥이 나오고 강원도 특유의 고추장과 된장의 중간 맛과 색을 내는 막장에다 고소한 참기름이 들어간 양념장에 쓱쓱 비벼 먹는 곤드레밥은 입속에 착착 감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다.

사실 내 고향도 강원도다. 집안이 그리 어렵던 집안은 아니어서 웬만한 음식쯤은 다 알고 있는데도 곤드레밥은 그때가 난생처음이었다. 무밥이나 콩나물밥이나 이런 것들이야 알고 있었지만, 곤드레밥은 들어보지도 못한 밥이었다. 그리고 곤드레라는 나물 또한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곤드레는 강원도 산간지방 화전민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전해온다. 그러니 곤드레는 없는 살림에 밥을 늘려 먹기 위한 구황식물이었다.

곤드레는 고려엉겅퀴라는 정식 이름이 따로 있는 식물이다. 그러니 곤드레나물은 강원도 사투리인 셈이다. 이 엉겅퀴는 보랏빛 꽃이 피며 키가 크고 잎은 질기고 뻣뻣한 털까지 나 있어 볼품없는 들꽃이다. 우리가 흔히 산이나 들판에서 보는 꽃인데도 모르고 있는 건 곤드레라는 사투리 때문이다.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다지만 나물 팔자도 알 수가 없다. 그 험한 산골 강원도 오지에서 먹을 게 없어 밥에다 듬뿍 넣어 먹던 나물밥이 이젠 도시까지 내려와 시내 곳곳에서 곤드레나물밥 집에서 볼 수 있으니 출세도 이런 출세가 어디 있는가 말이다. 남이 잘 먹지도 않던 음식이 어느 순간 귀한 음식 대접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미각을 사로잡았으니 나물 팔자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곤드레밥을 좋아한다. 정선에서 그 밥을 먹은 후로 경동시장에 나가 말린 곤드레나물을 사 두었다가 집안에 손님이 오실 때면 곤드레밥을 한다. 곤드레밥에다 양념장만 있으면 되니 다른 반찬도 필요 없고 할 일이 줄어 좋고 폼 나서 좋고….

물론 정선에서 먹은 밥맛을 내기 위해선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처음 몇 번은 그냥 곤드레나물을 넣고 밥을 했더니 풀 맛만 진동을 하여 밥을 먹기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곤드레나물을 산 곳에 다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두 번 나물을 삶고 들기름에 들들 볶아서 밥을 하래서 또 그렇게 해 봤어도 맛은 여전히 정선에서 먹던 그 밥맛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내 요리 지식을 총동원해 보았지만, 어느 땐 물대중이 또 어느 땐 밥맛이 영 아니었다. 분명 정선에서 먹던 곤드레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달콤하고 싸한 맛이었는데….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그러다 TV에서 언뜻 지나가는 화면에서 밥물이 문제요 쌀이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밥물은 찻물로 쌀은 찹쌀과 반반 섞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는 정선의 그 집 그 밥맛을 흉내 낼 수 있으니 정말 좋다.

물론 이것이 그 정선 집에서 밥을 짓는 방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먹는 사람마다 맛있다 하고 곤드레밥이 곤드레밥다우니 그것으로 내 어깨는 으쓱거리고 그야말로 매부 좋고 누이 좋다.

가끔 딸이 그런다. "우린 실험용 쥐가 아니라구요! 왜 맨날 우리한테 이상한거 먹으라고 하냐구요." 하며 항의한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또 어디서 나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만나게 된다면 해 보고 또 해보고 먹어보고 또 먹어보고, 그리하여 식구들에게,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고 영양 풍부한 음식을 그들 앞에 내놓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