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역사는 짧지만 강대한 나라다. 시장도 크고, 자본도 거대한 나라다. 그러나 가난과 전쟁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무역 강국이 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 말고는 사실상 거의 없다. 구한말 이후 100년은 기업을 선봉으로 절대빈곤을 뛰어넘은 위대한 전환기다. 위대한 기업과 위대한 국민이 새로운 역사를 써간다.
한국 기업의 지명도는 이제 미국 영화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스파이더맨이란 영화 속에서 스파이더맨이 뉴욕 한복판을 거미줄을 뿜으며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화려한 뉴욕의 건물 옥외 전광탑에 삼성이라는 로고가 번쩍인다.
오늘날 한국은 1조 달러의 무역 강국이다. 이 글로벌 무역 강국의 대표적 기수는 삼성, 포스코, 현대, 엘지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다. 한때 대우자동차의 동유럽 시장 진입은 칭기즈칸의 유럽 침공으로 비유되었고, 이는 전방위적이고 압도적인 한국인의 기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직 대우자동차의 직원은 알제리에서 모든 외국 기업들이 완전히 철수한 때에도 실탄을 장착한 무장 경비의 호위를 24시간 받으면서 업무를 하러 그곳을 찾기까지 했을 정도다.
역사는 한국에 혹독하게 대했었다. 1945년에 일본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가장 가난하고, 자원의 젖도 꿀도 없고, 지정학적으로 화약고이며, 동족상잔을 겪고, 또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저런 장미꽃 같은 기업들이 피어났다.
중국에는 덩샤오핑이 있었다. 그의 유골을 중국의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는데 이는 한국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춘추를 상기시킨다. 리더 하나의 의지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국력을 모으거나, 국가 역량을 통일로 집결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제사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국가 역량을 모으고 추진한 힘과 의지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시각의 조망은 언젠가는 틀의 정립이 이뤄지고,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시각과 그에 대한 이해가 수립될 것으로 본다.
각설하고 한국은 그간의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발전에 마냥 자족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오히려 특정 산업이나 특정 제품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반대급부의 위험이 우려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의 노키아다. 한국의 기업이 노키아처럼 몰리는 경제 상황이나, 선도하지 못한 기술 혁신이 갑자기 불어오면 이런 잠재적 변환기에 한국 경제라는 거대한 배는 좌초하기 쉽다.
사실 한국기업에서 대기업을 빼면 국제무대에서 눈부신 선수는 거의 없다. 벤처도 안방에서는 위세를 떨어도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과시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경제의 숲 어디엔가는 경제의 히딩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작아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겠지만, 그들은 정부나 금융제도의 그늘 속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게 확실하다.
최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에 미국의 주요 최고의사결정권자 기업인들과 대통령, 일류 대학의 총장 그리고 세계은행총재가 함께 모여 경제에 대해 논의한 기사가 실렸다. 이중 미국연방준비이사회의 의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던 래리 서머스 전직 하버드 총장이 빈부 격차를 '심각하게 부식시킬(profoundly corrosive)' 사회적 문제로 지적했다.
서머스 씨는 1970년대의 빈부격차는 흑백 간 대학교육의 1/2에 불과하지만, 2013년의 빈부격차는 흑백 간 대학교육의 2배에 달한다고 우려했다. 미국에서 기회의 균등은 점점 어렵다는 말이다. 그의 시각은 미국 사회가 소득에 따라 아이들의 사회적 잠재력이 부침할 것을 우려한 지적이었다.
래리 서머스의 지적을 한국의 중소기업에 대해 국한해 적용해 보자. 그건 한국경제가 오늘의 불안 리스크 중 하나인 특정 대기업이나 특정 상품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으로서 중소기업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서머스 씨의 '심각하게 부식시킬' 현상은 아직 한국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술 추격이 빨라질수록 그런 우려할 상황은 언제든 조건이 무르익으면 가능하다. 상상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지 않던가. 삼성이 소니를 따돌리고 애플을 따라 잡을 거라는 예측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러나 상상은 사실로 나타났다. 중국의 후발 추격 기업과의 격차를 내기 위해 오늘도 삼성전자는 격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사회적 빈부처럼 중소기업의 제품 기술 연구, 개발, 양산은 대기업과 극명하게 차이 난다. 중소기업의 리더가 탁월한 역량을 가져도 물이 없으면 배를 띄울 수가 없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다양한 면에서 중소기업 사장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들은 전략이 있어도, 또 고객을 창출할 수 있어도 현실에서는 연구에 투자할 돈이 없고, 양산 시설을 짓거나 설비를 살 자금이 부족하다.
중소기업청이 있지만, 중소기업에 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정부 예산은 미국이나 일본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비교하면 상당히 열악하다고 한다. 가령 한국의 경우에는 25%의 기업 분담을 뺀 75%의 자금을 지원해 주는 데 반해 미국, 일본의 정부는 중소기업에 100%의 자금 지원을 과감히 해준다고 한다. 견고하고 다채로운 산업 역량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은 이런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 그간 대기업에서 소위 일벌레로 20여 년 30여 년의 산업의 경력을 가진 인재풀과 중소기업을 연결하고, 또한 여기에 정부의 자금을 첨단 산업과 국가의 기간 산업에 협력체가 될 기업들을 발굴해 그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일어설 수 있게 실질적으로 해 주면 한국의 경제 체질은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덜 수 있다.
견고하고 우수한 중소기업들이 독일이나 대만처럼 자생적으로 일어나 대기업과의 협업 혹은 중소기업 간의 다양한 합종연횡을 하고, 이로써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이 개선되고 경쟁력이 높아져 기업과 구성원들이 상생 공존하고 나아가 국력의 신장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천체 물리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별에서 왔다고 한다. 한국 중소기업을 이룰 요소는 어디서 온 것이고 어디서 보강해야 할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우주의 비밀로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영향을 넘는 영역이다.
한국 중소기업에게 혼자 알아서 살거나 살아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용감한 무지다. 중소기업을 일으키는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플랫폼과 산업 방향을 기재부나 산자부의 정책 엘리트들이 중소기업 사장들과의 만남과 대안 창출을 제도적으로 기획해 전격적이고 집중적이고 포괄적이고 실질적으로 이뤄져 판을 새로 짜야 할 새로운 영역이다.
40억, 50억의 소규모 매출을 이제 막 시작한 중소기업 리더들의 고민은 개인의 고민을 넘는다. 양질의 중소기업 리더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자금과 정책적 지원을 정부가 전략적으로 집중 투하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100% 지원 정책을 정책 리더들이 과감히 택해야 한다.
백남준은 삼국유사의 판타지를 극찬했다. 20세기의 중국을 잠에서 깨운 덩샤오핑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적어도 삼국유사의 김춘추에게는 아류다. 한국 기업들의 역사는 짧지만, 그동안 굵고 환하게 빛났다. 우수한 대기업 리더들의 도전적 기업가 기질과 그 기업에 속한 숱한 샐러리맨들의 헌신도 그러한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이제 한국의 중소기업들에도 이런 기회를 열어 주고, 미국의 동종 업체들과 대만이나 독일 혹은 일본의 기업들과 이들이 경쟁하게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들을 통해 자본이 거대하게 유입되도록 하여 이들이 새로운 '기업 삼국유사'를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때다.
김춘추는 죽어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제2의 김춘추가 필요하다. 이들이 중소기업을 일으키고 자라게 할 정책적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역사와 운명은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