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복지시설에 웃음꽃을…

올해는 이른 겨울이 왔나 보다. 주초에 바람 불고 눈이 쏟아지더니, 주말에야 날씨가 들어섰다. 그동안 미루던 산 속 궁벽한 곳에 자리 잡은 노인 복지마을을 찾았다. 3년 간,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하고 매주 화요일 ‘박 집사와 함께 하는 즐거운 화요일’이라는 제하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던 곳이다.

그동안 노인들의 친근한 이야기와 노인 유머를 들려주고, 원예, 그리기, 노래 부르기, 종이접기, 웃음치료를 주마다 바꿔가며 진행했다. 인터넷에서 영화 몇 편도 찾아 보여드렸었다. 그러나 노인분들이 참여하기에 어려워하는 점도 없지 않아, 70회 정도에서 잠정적으로 방학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냥 들려서 손잡아드리고 말씀만 나누기에는 성이 차지 않아서 고심하던 중, 인터넷에서 모을 수 있는 대로 볼거리들을 모아 한 보따리 만들어 가지고 노인분들을 찾은 것이다. 마침 수확한 쌀도 작은 자루로 한 자루 마련해 갖고 가는 길이다.

여름에 왔을 땐, 매주 틀림없이 농사 이야기를 하게 되고, 초보 농사꾼이 고생하며 농사짓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할머니들의 훈수 이야기도 적지 아니 들을 수 있었던 터라 수확한 쌀을 어디 혼자 먹을 수 있겠는가? 모처럼 왔다고 손을 잡으며 반기신다. 그동안 왜 그렇게 안 보였느냐고 하시기도 한다.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며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이구,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인사말을 드리고, 휠체어를 타신 뚱뚱하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더욱 다정한 인사를 건네 드린다. ‘할머니, 요사이 식사는 잘 하세요?’ 사무실에서 파악한 신상 정보에, 이 할머니께서는 자식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차별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욱 살갑게 대해 드리려고 하는데 그 마음이 전해지는지는 알 수 없다.

작년에 겪은 일은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들께서 식사 준비를 하시고 홀에 모여 계신데, 휠체어가 걸려 돌아가던 중, 그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몸을 돌려 내밀었던 손을 거두시는 게 얼핏 눈에 띄었다. ‘아차, 소홀한 모습을 보여 드렸구나’ 하고, 휠체어를 돌아 다가가니, ‘왜 갔다가 도로 와요?’ 하시는 게 아닌가? 상황을 설명 드리니 그제서야 손을 잡아 주신다. 요양사들 말마따나, 시설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서운함도 노여움도 많으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방에서 홀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어 방을 한 바퀴 돌아 인사드리고 홀에 나와 텔레비전 수상기에 노트북 연결 작업을 하였다. 마침 봉사활동 하러 온 고등학생 덕분에 준비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내 인터넷 카페 목록, 위쪽에 따로 마련한 ‘노인 동영상, 노인정 사진, 노인 이야기자료’에서 첫 번째로 보여드릴 항목을 찾았다. 무엇을 제일 먼저 보여드려야 호기심을 갖고 계속 보고자 하실까? 사실 고령이신데다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으시니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말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길어도 대번에 싫증을 내시기 때문이다.

첫 번째 눈에 띈 동영상이 ‘송소희와 송해의 노래’ 편이었다.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은, 앳된 송소희가 나오고 능숙한 할아버지 사회자 송해 씨가 나오자, 본 기억이 나는지 반기신다. 이윽고 귀여운 손녀 송소희가 앙증맞게 ‘여엉감’ 하고 시작을 하고 ‘송해 씨가 ’잘했군, 잘했어‘ 하자 할머니들 얼굴에 가득 웃음이 흐르신다.

어느 할머니는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춤을 추신다. 노래가 끝나자 직접 극장에서 본 것처럼 박수갈채를 쏟아내신다. 옛 노래를 몇 순배 돌리고, 중국 처녀들의 ‘옷 갈아입는 무용 ’을 보여드렸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신다.

절정은 중국 여자 서커스단의 재주 시연이다. 바퀴 하나 달린 높은 자전거를 타고 발등에 올려놓은 다섯 개의 접시를 발로 던져 올릴 준비를 하자 벌써부터 가슴을 졸이신다. 던져 올린 다섯 개의 접시가 머리 위 접시에 그대로 얹히자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진다.

그리고 한 팔, 한 다리를 못 쓰시는 할머니를 격려키 위하여 특별히 마련한 ‘두 팔 없는 중국 여인’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두 팔 없는 여인이 모든 생활을, 게 잡기, 문 따기, 식사 준비, 세수하고 옷 입기, 식사하기, 트럼프하기 등을 두 발로 훌륭히 해내자 할머니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금강산, 설악산 구경을 끝으로 텔레비전 보여드리는 시간을 마치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흘러 할머니들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율동이나 체조, 작업을 못 했지만, 그런대로 두 시간 동안 좋아하시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나 자신 흐뭇했다.

내 역량 이상, 재주 이상 어찌할 수 있으랴? 그러나 가족을 떠나 계시는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어떻게 하면 즐겁고 건강한 시간을 드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방법을 찾아 나가면 좋은 방안이 생기리라 믿는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되뇌며, 다음 또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하여 올 것을 약속드리고, 어둑어둑해진 시설을 뒤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