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大 함정 빠진 한국… 과감한 외과의사 필요"

"권력이 의회나 지방으로 많이 넘어갔는데 정치와 정책 프로세스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의회 권력과 합의하고 국민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임에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근 '한국 경제 전망과 정책 과제' 세미나를 열어 한국 경제의 당면한 문제를 규명하고 해답 찾기에 나섰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문제 해결 능력 하락, 국민 노령화, 산업 노쇠화를 한국 경제가 직면한 3대 함정으로 꼽았다.

정 이사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내 위기관리 경험이 풍부한 데다 산업자원부 장관과 17대 국회의원을 지내 정·관계에 인맥도 넓다. 지난 9월부터는 중국 최고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정책고문을 맡아 간접적으로 중국 정부에 정책 조언도 해주고 있다.

정 이사장은 "시진핑의 개혁이나 리커노믹스(리커창 총리의 경제정책)는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가 없다'는 동의 아래 모험적인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며, 아베노믹스도 성장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라면서 "반면 한국은 전반적으로 국가 역량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있어 인적·물적 역량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정 이사장은 "현재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고난도의 게임에 직면해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문제 제기에는 성공했지만 문제 해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그 사례로 지난 8월 '월급쟁이 증세'라는 비판에 현 정부가 처음 만든 세제 개편안이 좌초된 것을 들었다. 그는 "세제 개편안 자체가 세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개편안이 좌초되면서 앞으로 국민을 설득할 모티브를 만들기 쉽지 않게 됐다"며 "내년 하반기가 되면 재정을 써서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막아야 하는데, 재정 여력이 너무 떨어져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국민 노령화와 관련, "자산이 부동산에 치중돼 있어 자산 디플레가 심각하고 생활비를 가계 대출로 해결하고 있는데 노령화되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안심 설계가 부족해 민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또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쇠화되면서 사업 역량이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중국이 급격하게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돌파구의 하나로) 일본의 산업 재편 과정에서 상당 부분 한국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한·일 관계가 악화돼 이것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재정 여력을 쌓을 것을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만약 재정 능력 없이 이대로 가다간 저성장이 고착화된 '취약한 선진국'이 되고 만다"면서 "세입 확보를 위해서는 고부담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 활성화 쪽으로 방향을 확실히 할 것을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중국, 일본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는 안에서 싸우고 있다"며 "현 정부가 돌파구로 내세우는 창조경제는 모호하고 구체성이 떨어진다. 기업들이 과감히 투자에 나서도록 기(氣)를 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책 담당자들은 사과가 썩었을 때 도려내지 못하고 방치하다가 먹을 수 없는 사과를 만드는 식의 정책을 펴고 있다"며 "과감한 외과의사 같은 정책 담당자들이 나서서 불확실성을 잠재워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