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CIA요원" 아버지의 고백, 내 소설 모티프

"잘 팔리는 책에 대해 사람들은 '이게 과연 문학인가'라고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책장이 잘 넘어가 '다음은 어떻게 되지?'라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책에 대해서도 '소설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접근성 높은 소설을 쓰는 게 문학적 대죄(mortal sin)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지금까지 모두 55만부 팔린 책, '빅 픽처'의 작가 더글러스 케네디(Kennedy·58)가 신간 '파이브 데이즈' 출간 기념으로 방한했다. 2일 비행기에서 막 내린 그를 만났다. 국내 판매 기준으로 '모멘트'는 13만부, '템테이션' 11만7000부, '더잡' 10만 4000부…. 계속해서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이 남자는 "내 삶의 최우선 가치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소설 주인공은 대개 강하게 욕망하고, 잠깐 성취했다가, 배신당하고, 좌절한 후 다시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왜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나.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을 네 단어로 요약하자면 '당신은 대체 뭘 원하나(What do you want)'다. 누구나 항상 또 다른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내 세대는 젊어서 '가족의 압박'을 많이 받은 세대다.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는 내게 항상 '글은 밤에나 써라. 변호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해라'고 권했다. 내가 '빅 픽처'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내가 만일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였다. '내가 저걸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고 있어'라는 갈등 속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덫에 걸린다. 그 덫을 만든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1997년작 '빅 픽처'는 사진가를 꿈꾸는 성공한 변호사가 그 꿈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다. 어떻게 구상했나?

"내 어릴 적 부모님은 맨해튼에서 60㎞ 떨어진 올드 그리니치에서 여름을 보냈다. 부유한 백인 동네였다. 1994년 첫 소설을 쓰고 그 동네를 지나가는데 브룩스 브러더스 양복을 입은 남자와 마주쳤다. 잘나가는 사업가처럼 보였고, 비싼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내가 만일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았다면 저렇게 됐겠구나' 생각하면서 소설을 구상했다."

―당신 소설에는 이중생활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빅 픽처' 주인공은 아내의 정부(情夫)였던 사진가 행세를 한다.

"내가 19세 때다. 광산업을 했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난 사실 CIA 요원이야'라고 고백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부모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이중생활자들을 여러 번 언급하는 것은 그 영향일 거다. 사람은 남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성공을 꿈꾸며 부나비처럼 질주하다 파멸하는 인물들을 그려내지만, 작가인 당신은 11권의 소설이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인기 작가가 됐다.

"'빅 픽처'를 썼을 때, 나는 41세였다. 결코 젊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극작가, 기자, 여행작가 등 닥치는 대로 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했지만, 한동안 조국인 미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늦게 성공한 덕에 성공에 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성공에는 책임감이 동반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계속 쓰면서 기준을 높여가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성공이 따라온 것 아닐까."

―당신 책은 최고의 '페이지 터너(page-turner)'로 불린다. 비결은?

"소설에는 레시피가 없다. 나는 모든 책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독자가 주인공들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한다. 글쓰기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매일 쓴다. 한국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라운지에서도 썼고, 내일 아침에도 쓸 거다. 택시, 기차, 호텔,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지금도 최근의 모로코 여행을 바탕으로 12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

[더글러스 케네디(Kennedy] "기만적인 미국이 싫다"他國에 살았던 사나이

1955년 뉴욕 맨해튼 출생. 메인주 보든 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1977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극단을 만들기도 했다. 1994년 영국에서 발표한 첫 소설 '데드 하트(The Dead Heart)'가 전 세계에서 700만부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대표작으로 '빅 픽처'(1997), '템테이션'(2006), '모멘트'(2011) 등이 있다. "기만적인 미국이 싫다"면서 영국·프랑스 등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은 미국 메인주 위스커싯(Wiscasset)에 살고 있다.

[빅 픽처 줄거리] 꿈꾸던 삶이 굴러왔다, 그 끝은?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변호사인 벤은 마음 한쪽에 사진가의 꿈을 품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정부(情夫)인 사진가 게리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다. 벤은 죽은 게리로 위장해 산골마을에 숨어들어 새 삶을 시작한다. 심심풀이 삼아 찍은 인물 사진이 지역 신문에 게재되면서 평생의 꿈인 사진가로 유명해진 벤, 명성과 함께 새 사랑도 찾았지만 매스컴의 관심이 쏟아지자 과거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