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여인은 늙어도, 여인의 사랑은 늙지 않는다

칠레 산티아고에 사는 58세의 글로리아는 퇴근 후 댄스 클럽에서 춤추는 것을 즐긴다. 10여년 전 이혼했고 장성한 아들과 딸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댄스클럽에서 만난 루돌포가 호감을 표시하고 둘은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혼한 아내와 각각 29세, 31세인 딸 둘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루돌포는 원래의 가족과 글로리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줄거리로만 보면 칠레 출신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의 '글로리아'는 중년의 위기나 중년 여성의 욕망을 다룬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년이나 여성을 미화하거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는다. 물론 글로리아 주변의 남자들은 어느 정도의 문제를 갖고 있긴 하지만, 이로 인해 그가 부당한 취급까지 받고 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아줌마 영화'의 클리셰와 허영을 모두 버린 이 영화야말로 중년 여성의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남자든 가족이든 누구든 계속 사랑해야 하는 여자, 그게 바로 글로리아다. 그의 사랑은 아직 미완성일지언정,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다.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주연 폴리나 가르시아에게 의지하고 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안경과 가발처럼 보이는 숱 많은 머리, 그리고 평균 여성보다 조금 큰 덩치는 외모 면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한 여장남자 캐릭터 '투씨'를 연상시킨다. 이런 그가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서 뱃살 늘어진 중년 남자와 몸을 포갤 때, 글로리아란 캐릭터는 비로소 완성된다.

일직선처럼 보이는 인생에는 종종 일상을 탈피한 균열의 순간이 생기는데 이는 단순히 슬픔이나 기쁨처럼 한 단어로 규정하기 힘든 감정을 동반한다. '글로리아'는 음악을 통해 그 균열을 희열로 그려낸다. 글로리아가 차 안에서 도나 서머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한 소녀와 노인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워터스 오브 마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쳐다보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희열의 정점은 글로리아가 지인 자녀의 결혼식에 갔다가 파티에서 흘러나온 움베르토 토치의 '글로리아'에 맞춰 막춤을 추는 데서 찍힌다. 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