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최대실적 정유업계, 올해는 실적악화 시달려

지난 2011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고, 지난해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까지 달성했던 정유업계가 올해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과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에 실적이 곤두박질쳤던 2009년 수준의 실적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원재료인 국제 원유 가격은 중국 수요 등으로 인해 크게 내려가지 않은 반면, 휘발유·경유 같은 제품 가격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정유 부문 실적이 급락한 것이 주원인이다.

◇경기 회복, 기대보다 더뎌

에쓰오일은 올 들어 9월 말까지 순이익이 3172억원으로 작년 동기(6072억원)에 비해 무려 47.8%가 감소했다. GS칼텍스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6137억에서 4768억으로 22.3%나 줄었다. 가장 사정이 나은 국내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도 순이익이 8414억원에 그치며 지난해 같은 기간의 9201억원에 비해 8.6%가 감소했다. 2009년 순이익(7967억원)과 비슷한 수치다.

정유사의 주력 부문인 정유사업의 부진이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부문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올 3분기 누적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줄어든 1152억원에 그쳤다. 2011년(6918억원)과 비교하면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처럼 부진한 실적의 주요인은 정제 마진에 있다.

정유사의 원재료인 석유 가격(두바이유 기준)은 지난 2일에도 연초 수준인 107달러를 나타내는 등 1년 내내 등락폭이 작았다. 반면, 휘발유 가격은 지난 2월 배럴당 133달러 선에서 11월 현재 115달러 선으로 13.5%나 하락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 제품을 생산해 이익을 얻는 정유사로선 수익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원유 가격이 하락하지 않은 것은 중국 등에서 정유 설비 가동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신영증권 오정일 연구원은 "올해 미국과 중국의 정유 설비 가동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미국은 올해 허리케인 영향이 없어 공장 가동률이 높았고, 중국은 설비 증설이 많았다"고 말했다.

'땅 위의 유전'이라 하는 고도화 설비도 제품과 원유 가격 차이가 좁혀지면서 올해는 제 역할을 못했다. 고도화 설비는 투자비가 수조원이 드는 대신, 싼 원유를 원재료로 쓸 수 있어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올해는 제품과 원유의 가격 차이가 작아 고도화 설비에서도 이익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외 신·증설 등 경쟁 심해져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 여건이 나빠진 것도 정유업계 실적 악화의 한 요인이 됐다. 지난해엔 1달러당 1200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106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물량을 수출하더라도 예년과 비교하면 원화로 표시되는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올 1~10월 석유제품 평균 수출단가가 배럴당 117달러로 지난해보다 5달러가량 떨어진 정유사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수출 물량 자체도 소폭 줄었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 지역에서 주요 수출 대상국이던 인도네시아가 올 들어 보조금 정책을 축소하면서 지난해 6월 539만 배럴을 기록했던 대(對)인도네시아 수출 물량은 올 6월 175만 배럴로 급감했다.

정유 부문이 부진할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온 석유화학, 윤활유 부문 수출도 올해는 부진했다. 중국과 중동 등지의 신규 생산 설비가 크게 늘어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신흥시장에서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높은 이익률을 보였던 윤활유 부문도 올해는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이익률이 급감했다.

내년 전망도 불투명하다. 정유업계는 내년 유가가 올해보다 5달러 정도 낮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휘발유 가격이 상승세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