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쓰고 혼자 읽는다, 영화가 줄 수 없는 소설의 힘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라는 구분과 호명(呼名) 자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아졌다.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 '괜찮은 문학'과 '별로인 문학'의 구분만 남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문학적 주장을 옹호하는 한국과 일본의 작가가 만났다. 정유정(47)과 요시다 슈이치(45)다. 올해 데뷔 16년차인 요시다는 일본의 대표적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수상작 '파크 라이프')과 대중문학 성향의 야마모토 슈고로 상(수상작 '퍼레이드')을 같은 해에 받았던 스타 작가. 신작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은행나무) 국내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7년의 밤', '28' 등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시선이 된 정유정은, 마침 요시다의 오랜 팬이라고 했다.

―요시다 슈이치 문학의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드는 감성이 있다. 소설 '악인'을 좋아한다. 스릴러를 가장한 연애소설의 느낌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울컥해서 울기도 했다. 하루키보다 담백해서 좋다(웃음). 중편 '7월24일 거리'를 시작으로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정유정)

―정유정 문학은 아직 일본어 번역이 안 되었는데.

"대신 '7년의 밤'과 '28'의 시놉시스를 읽었다. '7년의 밤'은 첫 4~5줄을 읽고 나서 가까스로 멈췄다. 나중에 번역되면 온전히 책으로 읽으려고(웃음). 시놉 만으로도 정말 재미있더라."(요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지우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문학은.

"정유정의 '7년의 밤'과 '28'은 처음 몇 줄을 읽는 순간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좋은 이야기가 지닌 힘이다. 또 하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은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소설이다. 스토리가 재미있으면서도, 주인공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작품."(요시다)

"나 역시 아름답고 힘 있는 이야기가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지만 힘없는 이야기는 싫고, 힘이 있지만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도 원하지 않는다."(정유정)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장점을 두루 갖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캐릭터 내면의 목소리도 잘 들리는 작품이 '이야기' 자체의 힘까지 가질 수 있는 작품.

요시다의 신작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우주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둘러싼 국제 첩보전이다. 속도감 넘치는 필체로 박진감이 펄펄 넘치지만, 상대적으로 '악인', '퍼레이드' 등의 전작에 비해 인간 내면의 목소리는 조금 적게 들리는 듯 했다.

―이번엔 상대적으로 스토리 그 자체에 집중한 것 같다.

"조금 다른 실험을 해 봤다. 사람은 보통 생각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움직이지 않나. 그런데 이번에는 동작이 먼저고 나중에 생각이 뒤따라가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다. 예를 들어 길에서 누가 쓰러지면 아무 생각 없이 뛰어가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반면 살인을 할 때도 이유 없이, 생각 없이 죽이는 사람도 있다. 육체가 먼저 움직이고, 의미 부여가 그다음에 이뤄진다면 어떨까 싶었다. 전체 3부작 중 이번 책이 1부다. 내면의 목소리는 2, 3부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요시다)

―어떨까. 소설이 목소리보다 몸으로 승부한다면,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대중문화와의 승부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소설의 강점은 작가가 혼자서 쓰고, 독자도 혼자서 읽는다는 것. 오롯이 '혼자만의 쾌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쾌락을 줄 수 있는 다른 장르는 없다. 쓸 때 즐거웠으니, 읽을 때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요시다)

"이야기를 읽으며 밤을 새우고, 가슴이 터질 듯한 새벽을 맞는 것. 이것은 소설만이 주는 쾌감이다. 심장으로 흐르는 피가 몇 도인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심연의 정서까지 알려주는 건 소설밖에 없다.(정유정)"

―데뷔 당시와 지금, '좋은 문학'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나.

"전에는 나에게 집중하고 독자에게는 큰 관심 없었는데, 요즘에는 독자가 내 이야기 안에 들어와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페이지 터너(Page turner)에의 꿈이다."(요시다)

"변함없다.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 독자를 멱살 잡건, 질질 끌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데리고 가서, 내가 세상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 그 순간을 설득력 있게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문학이다."(정유정)


☞요시다 슈이치

1968년, 나가사키 출생. 쉬운 문장으로 동시대적 감수성을 잘 포착하는 재능이 빼어나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잇는 일본 ‘팝 문학’의 차세대 기수 중 한 명이다. 1997년 ‘최후의 아들’로 데뷔했고, 이번 ‘태양은…’이 15번째 장편이다. 대표작 ‘악인’은 이상일 감독, 쓰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그해 일본 아카데미 5관왕에 올랐다.

☞정유정

1966년 전남 함평 출생. 내면과 자의식에 침잠하던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 ‘닥치고 이야기’라는 돌파구를 제시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을 통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을 쓰고 있다. 응급실 간호사를 했었고, 지금은 7년째 권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