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총재와 맞짱 토론한 튀니지 출신 '알파걸'

지난 4일 오전 11시.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열린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 개소식 축사를 한 박근혜 대통령은 연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금발의 외국 여성과 반갑게 손을 마주 잡았다. 대통령은 이 여성과 밝은 표정으로 몇 마디 덕담을 나눈 뒤 김용 세계은행 총재, 현오석 경제 부총리와는 눈인사만 주고받고는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

대통령을 마주 대한 이 여성은 1972년생, 41세의 힐라 샤이크루후(Cheikh rouhou) 녹색기후기금 초대 사무총장이었다. 이날 거물급 인사들을 대하느라 얼굴이 홍당무로 변했지만, 미소를 잊지 않고 일정을 침착하게 소화해 주변에서 "보통내기가 아니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그녀는 GCF를 대표해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즉석 콘퍼런스에 참석, 현오석 부총리, 김용 총재 등과 맞짱 토론을 해 주목받기도 했다. 녹색기후기금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기존 환경기금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국제금융 기구의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선진국이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10월 이 기구 본부를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GCF 사무총장은 기후변화협약 참가 회원국을 대표한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주요 24개 이사국 대표가 표결로 정한다. 초대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에서 추천한 후보 3명이 경합했고,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지난 6월 선출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정식 이사국이 아니어서 표결권은 없었지만, 후보자 가운데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께서 지금까지 녹색기후기금이 이뤄낸 성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격려한 뒤 앞으로 목표한 자금 조달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며 "주변의 기대가 많고, 특히 본부가 있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도움이 절실하다. 많이 도와달라"는 취임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려온 커리어 우먼이다. 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학위를 받아 영어와 불어에 모두 능통하다. 시티그룹에서 북아프리카 지역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담당으로 경력을 쌓던 그녀는 2007년 35세의 나이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최연소 국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아프리카 개발은행 사상 최연소 임원으로 기록된 파격 인사였다. 유광열 기획재정부 국제금융협력국장은 "워낙 민간 자금 조달 능력이 뛰어나고, 경영 수완도 좋아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CF의 자금 조달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에 독일,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은 적극적이고 주요 회원국과의 관계 조율에도 일가견이 있어 GCF의 조기 정착을 바라는 우리 정부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4일 개소식 축사부터 환영 리셉션, 기후변화 콘퍼런스, 기재부가 주최한 환영 오찬과 인천시가 주관한 만찬까지 강행군을 한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건배" 같은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우리 측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인천시의 한 관계자는 "GCF가 초기에는 우리나라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야 하고, 사무국 운영과 관련해 지자체와 해결할 일도 많아 사무총장이 어떤 사람일까 관심이 많았다"며 "오늘 보니 지역과 협조도 잘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샤이크루후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에서 공공재원만으로는 2020년까지 1000억달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선진국이 GCF에 기금을 출연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