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강화하자… 現金사용량 20% 늘어

중견기업 A부장은 요즘 현금 100만원 정도는 지갑에 넣고 다닌다. 주말마다 골프를 치는데, 골프장에서 캐디피와 카트 대여료, 간식과 음료수값 등은 현금으로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한 골프장은 고객의 현금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현금 결제만 가능한 캐디피와 카트 대여료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10만원 올리고, 대신 카드 결제가 가능한 1인당 25만원 수준인 그린피는 11만원 깎아주는 꼼수를 쓰고 있다. 즉 현금으로 결제하는 고객한테 1만원 할인 혜택을 주는 셈이다. A부장은 "골프장이 신용카드 매출을 줄여 탈세하려는 의도라는 것은 알지만, 1만원을 아낄 수 있으니 현금으로 내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금 거래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들어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현금 경제)가 오히려 확대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말한다.

◇시중에 풀린 현금, 1년 전보다 21% 증가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시중에 풀린 현금 통화량은 51조25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1.7% 증가했다. 올해 1월 현금 통화량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7.8%(평잔 기준)였는데, 7월 19%, 8월 19.6% 등 증가세에 가속이 붙고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잔액 5억원 이상 개인 정기예금 총액은 지난 11월 말 기준 13조9800억원으로, 작년 말 14조9230억원에서 9430억원(6.3%) 줄었다. 은행에서 빠져나간 거액 예금은 초단기 수신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흘러갔다. 작년 말 18조4723억원이었던 개인 MMF 자금은 지난달 말 21조4440억원으로 2조9717억원(16.1%)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최고 38%) 과세 기준을 4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강화하면서, 거액 예금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빼 현금으로 들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현금은 추적이 불가능한 결제 수단이다. 시중에 현금 유통량이 늘고 있지만,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돈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고액권인 5만원권 회수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올해 9월까지 발행된 5만원권 2억6800만장 가운데 한국은행에 환수된 것은 1억2900만장(48.1%)으로, 2009년 처음 발행된 이후 환수율이 처음으로 줄었다. 최근 부산·경남 지역 은행들은 5만원권이 부족해 1인당 6장까지만 교환해주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이 과세를 피하기 위해 5만원권을 장롱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지하경제 전문가인 오스트리아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지하경제 비중은 2000년 27.5%였다가 2009년 24.5%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다 2009년 하반기에 5만원권이 발행되자, 2010년 지하경제 규모가 24.7%로 커졌다.

◇신용카드·현금영수증 등 투명한 거래는 줄어

현금 유통량은 늘고 있는 반면 신용카드, 현금영수증을 이용한 투명한 거래는 줄고 있다. 지난 9월 신용카드 결제 금액은 37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1.7% 줄었다. 신용카드 결제 금액이 줄어든 것은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이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합한 전체 카드 사용 금액의 증가율도 지난 2분기(4.1%)에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카드 사용 자체가 둔화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함정식 카드본부장은 "민간최종소비지출 증가율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카드 사용 둔화 현상이 소비 위축 때문이라기보다는 (과세 회피 등) 다른 이유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현금 거래→탈세→세수 부족' 악순환 우려

정부는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세무조사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금 거래 비중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금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현금영수증 제도가 도입됐지만,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매년 늘다가 올해 상반기에 처음으로 전년 동기보다 1.4% 줄었다. 현금영수증 없는 거래가 늘어나면 그만큼 자영업자는 소득을 축소 신고해 소득세를 적게 내고, 이는 다시 세수 부족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한국납세자연맹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유리 지갑'이어서 과세하기 쉬운 직장인, 근로소득자들만 세 부담을 더 크게 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