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스토리] 동료와 함께 가면 절벽도 오를 수 있다

서른여덟 살에 암벽등반(rock climbing)에 맛을 들였다. 1991년 대신증권 임원으로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라고 기억한다. 에베레스트산 등정 경험이 있는 직원이 손을 잡아끌었다.

처음에는 북한산 리지(암릉) 등반으로 출발해 인수봉에서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도봉산 암벽 코스나 인수봉 A, C코스를 주로 탔다. 그나마 제일 무난하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국산 장비들이 외국산보다도 좋아졌지만, 내가 한창 암벽을 탈 때는 국산 장비의 질이 조금 떨어졌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출장이라도 가면 등산화와 자일 등을 사오기 바빴다.

암벽등반의 매력은 설명하기 어렵다. 자일에 매달려 크랙(crack) 같은 바위 틈새를 손이나 발을 사용하여 올라가는 암벽등반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데없이 목숨을 거는 위험한 스포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으로 암벽을 타고 정상에 섰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물론 암벽등반은 위험하기도 하다. 나도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었다. 초보 시절에 인수봉 C코스 슬랩(Slab·신발의 마찰력에 주로 의존하며 등반하는 경사 30~70도 정도의 비탈) 지역에서 발이 미끄러져 10m 이상 밑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떨어지는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아, 이제 끝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체험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동료가 줄을 잡아줘서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넘겼다. 구사일생이었다. 설악산 공룡 리지를 오르려고 갔다가 갑자기 내린 폭설에 동료 1명과 함께 갇혀서 눈을 파고들어가 하룻밤을 지낸 적도 있다. 아찔했던 경험이다.

그래도 암벽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절벽도 도전해 보면 올라가는 길이 있고, 아무리 험한 암벽이라도 도전하고 올라가면 인간의 손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나 혼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오른다는 것이다. 동료 간의 믿음과 팀워크가 깎아지른 절벽도 오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선두에 서서 올라가는 팀원을 선등(先登)이라고 부른다. 맨 먼저 올라가면서 뒤따라 오르는 팀원들을 이끌어야 한다. 뒤에서 올라가는 팀원들은 앞사람이 실수로 떨어지더라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팀워크가 목숨처럼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인생도,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암벽은 스승이고 학교였던 셈이다. 결단력과 팀워크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암벽에서 배운 또 하나의 교훈은 균형 감각이다. 균형을 잃으면 암벽에 오를 수 없다. 회사 일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면 내 생각, 내 고집에만 묶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료의 의견, 주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융통성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산에서 배웠다. 대부분 사람은 코스가 험하고 위험해 보이면 긴장을 하기 때문에 난코스에서는 큰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 반대로 쉬워 보이는 코스, 등반을 마치고 돌아가는 하강 코스에서는 사고가 많다.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봤다.

나는 2010년도 3월에 전북은행에서 처음으로 은행 경영을 맡을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전북은행의 총자산은 7조2000억원에 그쳤지만 이제는 13조원으로 커졌다. 올 7월에는 열한 번째 금융계열 지주사인 JB금융지주로 새로운 출발도 했다. 암벽등반에서 배운 도전 정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산에서 배운 대로 안정적이고 어려움이 없는 시기에도 항상 앞날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평소에 리스크(위험) 관리를 단단히 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그렇게 늘 준비하고 있어서 경기 침체 등으로 경영 환경이 다소 어려워져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요즘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의 어려움이 적지 않다. 형편이 좋았을 때, 상황이 나빠질 때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부끄러운 고백으로 맺음말을 대신하려고 한다. 암벽등반을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또 그 꿈을 꼭 이루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일에 치이다 보니 여유가 없다. 내 인생의 가장 아쉬운 일이다. 버나드 쇼의 비문(碑文)대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한 JB금융 회장은] 工大 출신 금융 CEO… 김상협 前국무총리의 아들

김한(59) JB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권 CEO(최고경영자)로는 드물게 공대 출신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미국 예일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김 회장은 “원래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버님이 ‘이공계 공부를 한 뒤에 경영학을 하면 좀 더 넓은 시각과 균형 감각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공대 진학을 권하셨다”고 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고려대 총장을 지낸 고(故) 김상협 전 국무총리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서울 혜화동의 오래된 한옥에서 살고 있다. 1930년쯤에 지은 도시형 한옥의 대표 사례로, 서울시 민속자료로도 지정된 집이다.

미국 GM 본사, 동부그룹 미국 현지법인 지사장 등을 거쳐 1989년 귀국, 대신증권에서 일하면서 금융권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메리츠증권 부회장, 금융감독위원회 기업조정위원 등을 거쳐 2010년 전북은행장이 됐고,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