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墓자리가 풍수의 전부는 아니다"

경남 김해의 수로왕비릉 옆에는 '파사(婆娑) 석탑'이라 불리는 기묘한 형상의 탑이 있다. 그런데 이 탑은 남해의 풍랑을 진정시켜 준다고 해서 진풍탑(鎭風塔)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최근 연구서 '한국풍수인물사'(민음사)를 낸 풍수(風水)학자 최창조(63) 전 서울대 교수는 "이것은 분명히 비보(裨補)의 예라고 할 수 있다"고 짚는다. '비보'란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풍수 용어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 안악 3호분을 직접 답사하던 그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안악에서 길게 바다로 돌출된 부분…, 그러니까 남자 성기 모양인 귀두부(龜頭部)에 터를 잡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 자생 풍수가 즐겨 찾던 자리 잡기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이 책에서 '풍수란 통일신라 시대 말기에 이르러서야 당나라로부터 수입된 외래 사상'이라는 통설에 반기를 든다. 그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는 소박한 자생 풍수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흔적을 신라의 석탈해가 초승달 모양의 집터를 빼앗았다는 얘기나 선덕여왕이 여근곡(女根谷)에 백제 군사가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기록에서도 찾는다.

최 전 교수는 "땅을 잘 골라서 자기 집안이 그 덕 좀 보기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술법 풍수, 음택(陰宅·무덤)풍수가 우리 풍수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도선 국사가 정착시킨 자생 풍수는 '좋은 땅 찾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고쳐서 좋은 땅으로 만들기'의 풍수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풍수는 "조화로운 생활을 중요시하는 양택(陽宅·살아 있는 사람의 집터)풍수"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의 지리학'이었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는 이 책에서 도선의 풍수 사상이 고려의 묘청에 의해 개벽 사상으로 나타나고, 조선 건국 때는 무학 대사에 의해 현실 정치로 표현됐으며, 다시 조선 말의 홍경래와 전봉준으로까지 이어진다는 풍수사(史)의 흐름을 짚는다.

1992년 '참된 풍수를 공부하겠다'며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그는 국내에 풍수지리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물론 '명당이란 없다'는 그의 지론은 '풍수지리학 자체를 파괴하는 허무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