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하철은 천하제일이다. 서울 지하철의 객차는 시계의 분침 같다. 2012년 한해 지하철 이용객 수는 23억 명이 훨씬 넘었다. 추돌 사고도 없는 철길이 327km다. 옛날에는 철길 따라 빈곤과 다산의 쌍둥이같이 늘어섰지만, 근래의 지하철은 자금의 중심지고, 노선의 교차점은 빠르고 거침없는 번영을 누린다.
새벽에도 사람들의 출근길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코엑스 바로 아래 2호선 삼성역에서는 사람들이 팔을 휘젓는 정도나 그 보폭이 달라도 그 발소리는 마치 그림자 용사들의 행군소리 같다. 이용객 수의 증가만큼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도 고장 난다. 강남이나 강북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에스컬레이터 이용 형태는 같다.
그 오른쪽은 하중으로 무겁고, 다른 한쪽은 동적이고 가볍다. 2013년 여름은 전력난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자발적으로 멈춘 구간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은 바쁜 만큼 아프고, 아픈 만큼 자기 치유도 하고, 수동 스마트그리드 역할도 한다.
지하철은 와이파이도 공짜다. 지하철 내부에서도 공짜 인터넷을 통해 게임접속이나 정보를 얻는다. 스마트폰은 이미 연령을 가리지 않고 애용되는데 그걸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지하철이다. 지하철은 정보의 벌통이다.
사람이나 위치 불문하고 지하철은 공짜 와이파이에 접속을 하고, 불편을 느끼지 않는 대량의 정보 공유지다. 업무를 인터넷으로 접속해 볼 수도 사실 있다. 사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된 곳이다. 출퇴근길이 30분이든 1시간이든 창밖의 어둠을 쳐다볼 무료함을 벗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전자책이 흥행될 수만 있다면 지하철은 연예 정보의 소비만이 아니라 정보의 융합도 일으킬 실크로드다.
지하철은 인터넷의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인종의 서식지다. 이 서식지에서 정보의 공짜 과실은 눈과 귀에 마냥 즐겁다. 통신기기의 하드웨어 속도만 보장되면 다양한 접속을 통해 지하철의 풍부한 이동성을 타고 사람들은 개인의 상상과 취향에 맞는 출근 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대중교통이란 문명의 터전에는 문화의 꽃이 피어난다. 23억 명의 이동은 대중교통 르네상스의 증거다. 지하철 와이파이는 시민들의 정보 매개체다. 지하철의 순환처럼 정보의 순환이 더 빈번해지고, 다채로워지면 다양한 모바일 산업들이 태동될 수도 있겠다.
양질의 이런 문화 산업적 측면과 달리 어두운 그늘이 하나 눈에 띈다. 술 문화로 가끔 야기되는 폭언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구조적이고 반복적이지 않다. 반복적이고 다발적인 모바일 악습은 대개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이동할 때 보인다. 지하철역 구내나 구간 이동 때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해 멀티미디어 시청을 동시에 하는 게 문제다.
왕십리 같은 돌계단이 많고, 체격이나 연령이나 보폭이 제각각인 다중이 출근길에 눈을 온통 스마트폰에 뺏겨 부주의한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행동은 무엇보다도 무책임하다. 시각적 집중은 신체를 균형 잡아 주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지 않나?
산악 등반 후 하산할 때 신발 끈이 풀려 뒷사람의 발에 밟히면 선행자는 뒤로 발라당 넘어져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신체적 균형 감각이나 시각 기능이 꽤 탄탄하고 민첩한 청춘이 스마트폰을 보며 갈 때는 나름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발걸음은 소걸음의 여유로운 안정감과는 다르다. 소는 눈을 뜨고 걷지만 사실 이런 사람은 눈을 감고 걷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돌출된 상황이 벌어지면 큰 사고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TV나 이런 공신력 있는 곳에서 이걸 한번 다뤄봤으면 싶을 정도다.
이렇게 걸어 다니는 일은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관심한 짓이며, 또 이기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타인들의 배려에 자신의 안전을 구걸하는 하는 건가 의문이 생긴다. 남의 배려를 강제로 바라는 짓을 유아도 아닌 성인이 서슴없이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유아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사람들같이 급한 이동 문화에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배짱 어린 유아적 사회 행동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만 알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문화는 지하철 대중교통 문화든 문명에서든 쏙 빼버리고 싶다. 눈이 없으면 인간은 걷기 어렵다. 당연히 스마트폰에 집중해 다중이 이동하는 협소한 공간임을 인식해 유유자적하는 행동을 마냥 하는 것은 여유도 아니다. 그런 사회적 결핍은 문화적 장애의 하나라고 보고 싶다.
지하철 문화에 느릿느릿한 여유는 꼭 필요한 문화 요소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귀와 눈을 딱 들이대고 걷는 습관은 그 결핍을 치유하는 약이 못 된다. 지하철은 한해 23억이 타고 다니는 서울의 혈관이다. 공짜 와이파이를 곶감처럼 빼먹기만 할 일이 아니다. 안전한 보행으로 다른 승객들과 자신들의 안전한 보행도 신경 쓰고 배려할 문화를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