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한국 證市… '3大 허들' 넘어야 희망 있다

"'주식 안전 투자처'로 각광받아온 한국 증시의 매력이 떨어졌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 10일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 피난처를 떠난다(Foreigners leave South Korea stocks haven)'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증시를 이같이 평했다. FT는 불과 석 달 전에는 "한국은 흔들리는 신흥국 증시에서 피난처"라면서 한국의 견조한 거시경제 기반을 칭찬했었다. FT는 "한국은 3분기 기업 실적이 실망스럽고 국내시장 유동성이 빡빡해 외국인의 투자 열정이 식었다"며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반등하고 있는 일본 증시와 개혁 기대로 살아난 중국 증시처럼 한국 증시에도 '새로운 스토리(a new narrative)'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메릴린치가 최근 내년 한국 증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한국 증시에 대한 기대도 한풀 꺾인 상황이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 증시가 나란히 움직여온 '동조화 현상(커플링·coupling)'이 깨지고 미국과 일본 증시가 함께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회복기에 한국 증시가 나 홀로 소외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본지는 우리투자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에 의뢰해 한국·미국·일본 증시의 성적을 가른 요인들을 분석했다.

◇美·日 기업들은 승승장구, 한국은 답보

올 들어 미국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500 지수는 39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증시 역사를 새로 썼다. 일본도 올 들어 닛케이225 주가가 연초 대비 49%나 올랐다. 반면 한국 증시는 코스피가 2060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초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한국은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조기 축소 전망과 같은 글로벌 증시의 악재가 터질 때마다 증시가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반대로 호재에는 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가가 덜 올랐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무엇보다 한국 기업 이익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국은 증권사들이 3분기 실적 전망을 내놓은 249개 기업 중에서 예상보다 수익이 감소한 '어닝 쇼크' 기업이 167곳으로 67.1%에 달했다. 수익이 증가한 '어닝 서프라이즈' 기업은 32.9%(82곳)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은 어닝 서프라이즈 기업이 74.5%, 일본은 65.2%로 한국 기업들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보였다. 특히 일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기업 실적을 전망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7~10월 중 15조원을 순매수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11월 이후엔 태도를 돌변, 1조8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최근 일본 증시에 외국인 투자금이 6주 연속 순유입된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미·일 가계는 부채 털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빚더미

미국, 일본의 경우 가계 부채 문제가 개선되면서 가계의 투자 여력이 회복됐고, 이 여유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어 실탄 역할을 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에 따르면 미국의 가계 부채비율은 2007년 136%에서 2010년 122%로 개선됐고 일본도 124%에서 121%로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한국의 가계는 빚이 더 늘어 투자 여력이 바닥난 상태다. 한국은 같은 기간 가계 부채비율이 139%에서 150%까지 높아졌다. 신환종 팀장은 "누적된 가계 부채로 개인들의 투자 여력 자체가 줄어든 것이 (증시 부진의) 큰 원인"이라면서 "여기에 5년여 전 '펀드 트라우마' 때문에 개인들이 주가 2000선만 되면 환매에 나서 증시가 탄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와 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6조9000억원이 순유출(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것)됐으며, 유가증권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4조여원을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했다. 총 10조원 넘는 개인 돈이 증시에서 빠진 것이다. 개인 주식 거래 금액은 하루 1조~2조원 규모로 반 토막 났다.

◇미·일은 미래 성장동력 찾았지만, 한국은 오리무중

미국의 경우 셰일가스 혁명과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한 지속적인 IT혁명이 전체 산업 부문을 견인하고 있다. 또 일본은 아베 정권이 '일본 산업 재흥플랜'이란 지속적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에 더해, 강력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증시 안팎에서 "IT·자동차 이후 신(新)성장동력이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증권시장의 가장 큰 동력은 기업의 이익"이라며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IT·자동차 이후의 신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산업·금융계와 정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자본시장을 통한 실물자금 공급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정부, 정치권의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