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산한 꿈의 나라… 이방인이 보는 韓國

방글라데시에서 온 와리우라 브후아이야의 꿈에 고향에 있는 아내가 나왔다. 제주도가 어딨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갔다. 스리랑카에서 온 타실라는 꿈에서 사장, 사모, 공장장, 동료들을 데리고 랑카틸라카 사원, 시리기야 바위산 등 고향을 누볐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셰크할 마문은 사장에게 "내일부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꿈을 다섯 번이나 꿨고, 돼지 내장을 손질하는 중국 출신의 쉬첸밍은 꿈에서도 돼지 내장을 손질하거나 추방당하는 꿈을 꾼다.

장률 감독의 다큐멘터리 '풍경'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9개국, 14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에서 꾼, 가장 기억나는 꿈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안개 낀 인천국제공항서부터 가축의 내장이 축 늘어져 있는 마장동 축산물 시장과 파릇파릇한 채소가 돋아난 비닐하우스에서 어떤 이방인은 향수와 소망을, 또 다른 이방인들은 근심과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그들이 서있는 공간, 가축 내장을 다듬는 손길, 그리고 공장의 기계음까지 하나의 풍경으로 녹여낸다. 그 풍경은 실제의 공간보다 훨씬 스산하고 바래져 있어서, 마치 꿈속의 한 풍경처럼 보일 정도다. 한국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한국 안에서 사는 '경계인'들이 보는 한국의 풍경이 바로 그럴 것이다. 춥고 외로운, 꿈의 나라.

'풍경'은 사회적 약자로 취급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두고 분노나 동정으로 해석하지 않는, 보기 드문 영화이다. 꿈 같은 풍경 속에서 꿈을 이야기하지만, 믿음직스럽다. 장률 감독 역시 옌볜 출신의 재중 동포인 '경계인'이다. 12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