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선발 기준이 성적순? 재능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첫째

"60년 어린 후배들과 마음이 통하니 정말 뿌듯합니다"

미국의 한 철강회사 대표인 이동우(81)씨가 지난 9일 오후 모교인 서울 안암동 고려대를 찾았다. 자신이 뽑은 장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씨는 2011년 전 재산을 털어 '5달란트 장학재단'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1년에 5000만원씩 총 5억원의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주고 있다. 형편이 가난했던 이씨는 "장학금 덕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며 "더 늦기 전에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5달란트 장학재단은 성적이 우수하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순서로 장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가진 재능을 주위와 나눌 준비가 돼 있는지"가 선발 기준이다. 이씨가 장학재단 이름을 5달란트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액수를 재능껏 키워 주변과 나눴던 성경 속 한 남자에게 처음 주어졌던 돈이 5달란트였기 때문이다.

"돈만 주고 끝나는 관계는 의미가 없다"는 이씨는 장학생들에게 1년에도 몇 차례씩 편지를 보내 '어머니가 얼마나 아픈지' '유학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묻는다. 5달란트 정신을 잊지 않았는지도 항상 확인한다. 장학생들도 손편지로 답장하며 마치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듯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 해 수십차례 장학금 수여식을 진행하는 박정배 고려대 기획과장은 "이렇게 장학금 수여자와 수혜자가 가깝게 지내며 멘토와 멘티처럼 소통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2년째 5달란트 장학금을 받는 사회학과 김하경(21)씨는 공무원이었던 꿈을 NGO활동가로 바꿨다. 김씨는 "할아버지의 나눔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줬다"고 했다. 3년째 장학금을 받은 경영학과 최재은(22)씨는 "액수가 더 많은 장학금도 있지만 매년 이 장학금을 신청하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주시는 정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사회 공헌 활동과 관련된 공부를 더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동우씨는 "후배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