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 Take'란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영어를 알기 전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주고 받는다’ 란 당연한 거래를 이야기한다. 또 확대 해석하면 ‘주었으면 받는 게 있어야지’ 로 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해석도 나올 수 있고, 선후를 바꾸어 보면 ‘받았으면 당연히 주어야지’란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복지시설에서 노력 봉사, 재능 봉사를 하면서 이 말을 좀 달리 해석해 보려 한다. 준다는 것을 ‘봉사’로, 받는다는 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바꿔 보면 뜻이 명확해진다. 봉사했을 뿐인데, 하나도 아닌 둘, ‘기쁨’도 ‘보람’도 따르니, 일석이조 아닌가? 그러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봉사를 하거나 봉사 실적을 쌓기 위해서 하는 봉사는 참된 봉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기관이나 단체의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 남긴다거나 봉사 실적을 얻기 위해서 하는 학생들의 봉사도 '봉사' 그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더욱이 그런 일들을 통해서 얻는 성과는 그 실적을 나타내기 이전에 이미 그들에게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교회의 청년들 몇이 모인 봉사 모임을 알게 되었다. 남녀 성도 10여 명이 모여 조직한, 교회 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숨어 있는 자생 조직인 ‘작은 사랑 선교회’다. ‘나이 많은 사람도 끼워 줄 수 있어?’ ‘아, 그럼은요.’ 얼마든지 대환영이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복지시설에 대한 경제 지원, 노력 지원, 재능 지원이다.
그들이 세운 계획에 의하여 쫓아(?)다녔다. 그저 신이 났고, 그저 얻는 성취감이 컸다. 달마다 복지시설을 정해 1년간 봉사를 하고 또다시 선정하는 방법으로 확대해 나가기도 하고, 지금은 한 곳 어려운 시설을 계속 도와주고 있다.
경제적 지원을 많이는 못 해도 작은 시설에 휴지나 세제, 약간의 쌀을 가져가고, 노력 봉사로는 청소를 하거나 작은 시설 보수, 나무 전지, 목욕, 미용 등의 일들을 하였다. 재능 지원으로는 내가 하는 ‘즐거운 시간’ 운영이라든가, 장애인 시설에서는 ‘그림동화 시간’ 등을 전개했다.
시골 작은 복지시설에 해마다 몰려가 도와주는 김장은 그야말로 신나는 작업이다. 전날 저려 놓은 것을 씻고, 양념을 버무리고, 속을 넣는 일이 우리 담당이다. 몇 년 해 본 일이라 척척 손발이 맞았다. 슬쩍슬쩍 뜯어먹는 고갱이 맛과 간간이 ‘참’으로 먹는 돼지고기 배추 속백이쌈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작은 플라스틱 김장 통에 차곡차곡 쟁여져, 겨우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반찬이 되어 줄 것을 생각하니, 뿌듯한 감을 떨칠 수 없었다. 자원봉사는 그야말로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하는 봉사를 말한다. 참으로 모를 게 봉사자의 역설적인 면이다. 보이지 않고 없는 듯하면서도 있고, 또 많을 것 같으면서 일할 사람이 선뜻 없는 것이 봉사자다.
물론 복지회나 동사무소, 시니어클럽, 장애인단체에서 하는 봉사에도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조직에 들길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할 것은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털실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은 겨울철이 들어가기 전 시설에 연락하여 많지 않은 시간에 모자, 장갑, 목도리 같은 간단한 것들을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친목 모임을 운영해 오던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연말에 자선 활동을 하기 위해 모임에서 뜻을 모아 방문했다고 하며, 한편 많은 나이라 이런 노인복지시설이 전혀 나완 상관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참관도 할 겸 왔다고 한다. 원장님의 자세한 설명 말씀이 있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이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예비 이용자’라는 것이다. 요사이 노부부 가정이 많은데 한쪽이 먼저 죽고, 남은 사람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더욱이 몸이 성치 않다면, 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목욕탕에서 만난 선배의 아들과의 사연이다. 그 간 몰랐던 선배의 소식을 묻자, 얼마 전 타계하셨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시어 꼭 지키고 있어야 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인복지시설에 친숙해 왔고, 늦깎이 대학생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한 터에 현실 상황을 감안하여 조심스럽게 복지시설에 모실 것을 이야기하니, 정색을 하며, ‘우리 집사람이 아직 어머님을 효성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여, 섣부른 나의 제안을 무안케 했던 적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자손들과 같이 지내는 것 외에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본인과 가족 모두가 고통 속에 보내야 한다면, 그리고 생업에 지장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 남의 말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하긴 고향 촌 마을에 가면, 전엔 쉬쉬하던 것을, 시설에 가 있는 것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또 시설에 모실 의향을 전해 오는 집안 조카도 있다. 모쪼록 복지시설도 더 좋아지고 복지정책도 계속 개선되는 반면, 시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화되어 모두가 함께 복지를 누리는 사회가 되길 염원하며, 더욱 많은 자원봉사자가 봉사로 ‘기쁨과 보람’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