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정년으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의 철새 현상이 일어난다.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가깝고 저렴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 집을 사놓고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고 부유층들은 연중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바하마, 바베이도스, 카리브해 외딴 섬에 저택을 갖고 겨울에 그곳으로 이동하거나 거의 1년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
골프광들은 아예 미국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팜 스프링 또는 아리조나에 골프장 안에 있는 집을 사놓고 골프를 치면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영국의 겨울은 낮이 짧고 밤이 길어 오후 4시만 되면 깜깜해지고, 춥고 비바람 몰아치는 겨울 날씨가 많아 나이든 노년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따뜻한 날씨가 보장되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거나 겨울을 그곳에서 나고 싶어 한다. 12월이 되면 이런 철새들과 크리스마스 휴가 가는 사람들까지 몰려 공항은 장사진을 이루게 된다.
겨울을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골프를 치거나 먹고 쉬면서 지내려면 얼마큼의 은퇴자금이 필요할까? 55세에 일에서 손을 놓는다고 가정할 때 살고 있는 집을 빼고 적어도 2백만 파운드(한화 35억-40억)는 있어야 한다고 금융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이것이 비공식 통계이긴 하지만 애들 교육비를 빼고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 이만한 돈을 모으려면 씨티에서(금융가를 말함) 일하거나 대박을 터트리는 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부동산에서 고정수입이 있어야 한다.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수 있는 사람들도 상류층에 많다.
반면에 겨울이 되면 제대로 난방을 할 여유가 없어 냉방에서 지내다 사망하는 노인들의 소식이 때때로 뉴스에 나온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노년층을 포함해 대부분의 가정들이 난방비 아끼느라 영국 집들은 대부분 굉장히 춥게 산다. 영국 정부에서는 그동안 60세가 되면 누구에게나 겨울 난방비 보조금으로 한화 약 40만 원 정도를 매년 지급해왔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부 재정이 쪼들리게 되자 지급연령을 얼마 전에 65세로 슬그머니 올려버렸다.
최근 영국에서는 에너지 회사들이 전기와 가스요금을 10% 인상한다는 소식 들고 나왔다.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겨울만 되면 요금 인상을 하려는 이들에 각계에서 비난이 빗발쳤고 카메론 총리가 이들 사장단을 만나 겨우 설득한 끝에 올해는 전기, 가스요금이 동결됐다. 영국 노년층들의 겨울나기는 냉탕과 온탕이 교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