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웃음소리가 전광석화처럼 귀에 울렸다. 그 소리에 DNA에 퇴적된 박물관이 부활했다. 그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잊었던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았다. 소리는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재판관이다.
숲에서 사는 것들의 소리는 거짓이 없다. 몇 해 전 선릉 안에 홀로 있었다. 해상으로 태풍이 통과했다. 숲의 나뭇가지가 점점 심하게 흔들거렸다.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듯해도 무언가가 나무의 윤곽을 잡고 흔들었다. 바람 소리가 낮아도 가끔은 그리 무섭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인간에게 모든 언어는 근원적으로 외국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시대에 태어나든 언어에 대한 접촉은 문명과의 최초의 연결이다. 그걸 모국어라고 한다. 언어는 1차적 본능을 넘는 의사소통이고, 정교하게 인간의 문명을 짜는 베틀이다. 그렇게 짜던 게 갑자기 죽 찢어진 같았다. 언어와 허파에서 튀어나오는 웃음은 어떻게 다른 길래 오늘 이리도 다르게 느꼈던 걸까?
인간의 모든 언어는 문명과 원시가 교묘하게 분열되고, 미묘하게 통합되며, 문화나 문명권에 따라 지위, 친족관계, 거리, 전투, 사랑 등 모든 인간의 근원과 소유의 모든 것이 잠겨 있다. 가장 가까운 언어로 한국어는 특히나 권력의 노골적인 함수다.
1차적 배열과 오랫동안 무수히 반복한 언어적 위계질서가 맹렬하고 진하다. 한국어를 아무리 세탁해도 이 질서는 전혀 빠지지 않을 거다. 산 너머 그 집, 냇가 건너 사돈집이 다닥다닥 붙은 한반도다. 지형도 좁고, 모음의 개수도 적고, 발음(방언)도 같지 않다. 그 촘촘한 속에서라 도리어 위계의 구별이 필요했나보다. 그 질서는 너무 억세고, 뿌리깊다. 왕후장상과 장삼이사를 구별할 방법이 따로 없었고, 또 그걸 언어에 기필코 표시했다.
인간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특정 구역, 지역, 언어권, 문명을 가늘지만 넓고 크게 나눈다. 끝이 너무 질기면 도리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상황에 따라 인종을 교살하기도 하거나 암울한 강제수용소를 단위로 인간이 인간에게 '존재범죄'를 저지른다. 특정권력은 아니라도 거대한 상황이나 압도적인 폭압적 권력에 의해 수동으로 타인의 존재를 없애는 짓은 참혹한 범죄다.
인간의 언어에는 공간의 힘이 들어있다. 어떤 언어든지 거리는 넓히거나 줄이거나에 따라 냉혹의 정도가 다르다. 때로 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넉넉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언어든지 인간의 신체적 거리는 언어적 거리로 보여진다.
인간의 언어는 증오도 들어 있다. 사회를 빙하기로 만들거나, 피를 묻힌 손도 그런 뒤끝을 당할 거다. 언어에서 증오를 없애는 것은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과 비슷하다. 본질적으로 언어는 인간의 사고 관습에 의해 구축된다.
인간의 언어는 월드컵의 축구 천재들보다 더 정교하고 광대하다. 언어를 발성하는 데 필요한 선수는 입, 이빨, 혀, 성대, 코, 입술, 뺨 등이다. 이들 간에 음(소리)을 주고받는 공은 한 개가 아니다. 여러 음을 공처럼 주고받거나 연결시키는 정교한 훈련이다. 방언을 고치기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듯이 억양과 강세도 구현하기가 퍽 어렵다.
발음은 정밀하고 정교한 문명의 척도다. 인간은 가끔 유머 속에서 낄낄거리다 길을 잃고 원시림으로 돌아온다. 이 찰나에 비로소 문명 곁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원시림이 아름답게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