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경영권 방어用 파생상품, 거액 손실 우려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 2006년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상선 및 현대증권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거래했던 파생상품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다. 영업이익은 700억원 규모인 회사가 이보다 6배가 넘는 파생상품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현대상선 주가 등이 계속 부진할 경우 내년 이후 자본잠식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손실 커지고 있는 파생상품 거래

현대그룹의 파생상품 거래는 지난 2006년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됐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등 범현대가가 현대상선 지분 29%를 보유, 경영권 유지가 위험하게 되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대신증권 등 9곳과 17건의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 대신증권 등이 현대상선 주식을 사주고 대신 현대엘리베이터가 이 주식이 하락할 경우 손실을 보전해 주는 계약이다. 대신증권 등이 현대상선 지분 16%를 사들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늘려 현 회장은 경영권을 방어했다.

하지만 해운업 불황 여파로 현대상선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서 현대엘리베이터가 부담하는 파생상품 평가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7일 기준으로 파생상품 평가손실은 4450억원에 이른다. 이 파생상품은 내년 3521억원 등 오는 2017년까지 차례로 만기가 돌아온다. 만약 현대상선의 주가가 지금처럼 부진하다면 파생상품의 손실은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이날 공시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현금성 자산은 영업이익 700억원을 포함해 약 4700억원이다. 따라서 장기 불황에 빠진 해운업이 호황으로 돌아서 현대상선의 영업이익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파생상품 만기가 닥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자본잠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날 공시에서도 밝힌 내용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공시된 현대상선 파생상품 손실은 (만기일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장부상 평가손실이지 실현 손실이 아니다"면서 "파생상품 계약 만료 시점에 재계약을 맺어 손실 실현을 피할 수도 있으며, 현대상선 주가가 오르면 다시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하면서 현대상선 770만주 담보로 잡혀

지난 10월 현대상선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신청해 승인받았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란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부채 상환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일정 부분(80%)을 인수해 상환 리스크를 줄여주는 제도다. 현대상선은 이를 바탕으로 10월 22일에 만기 도래하는 2800억원어치의 회사채 중 80%에 대한 차환 발행을 신청했었다.

이날 현대엘리베이터의 정정보고서 공시를 통해 당시 현대상선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자구계획 이행, 후순위 CBO 인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여신거래특별약정을 체결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공시 내용을 보면, 현정은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는 보유 중인 현대상선 주식 772만주를 KDB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다.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은행 측이 담보 주식을 임의 처분하도록 동의하고, KDB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경영진 교체 등 지배구조 개선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확약서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향후 현대상선 구조조정이 미진할 경우 현대상선은 물론 현대엘리베이터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게 됐다. 현대그룹 측은 이에 대해서 "주식을 담보로 맡긴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면서 "해운업이 회복되면 회사채 상환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