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돈 풀기 축소' 나서면 5개 신흥국(브라질·印尼·印·터키·남아공)이 가장 위험

미국의 테이퍼링(tapering·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는 것)을 앞두고 세계 경제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 5월 벤 버냉키 미 연준(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 가지고도 전 세계 주가가 추락하고, 채권금리는 오르는 '버냉키 쇼크'를 겪었기 때문이다. 테이퍼링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커지면서 불안감도 높아져 가는 것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올해 마지막 회의를 18일(한국시각 19일)까지 연다. 이번 회의에서 테이퍼링이 결정되면 FOMC의 결정문이 공개된다. 하지만 이날 테이퍼링이 결정되지 않더라도 월가에서는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양적완화 축소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FOMC는 내년 1분기(1~3월) 중에는 1월과 3월 두 차례 회의를 열 예정이다. 미 연준은 현재 매달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시장에서 매입하고 있는데, 월가에서는 이를 50억~100억달러씩 줄여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테이퍼링하면 5대 신흥국이 가장 위험

가장 최근 월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2월이나 내년 1월에 테이퍼링을 한다는 대답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조사에 따르면, 12월 축소 전망은 11%, 내년 1월은 32%, 3월은 42%로 90% 가까운 펀드매니저들이 3월까지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이유는 이미 테이퍼링 조건이 성숙했다는 것이다. 미 연준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통화정책 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지난 6월 버냉키 의장은 올해 실업률이 7.2~7.3%,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1.2%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11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5년 만의 최저치인 7.0%로 떨어졌고, 물가상승률은 1.2%를 기록했다. 지표 숫자만 보면 '12월 테이퍼링(Dectaper·12월의 영단어 December와 테이퍼링의 합성어)'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지난 5~8월에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세계 주가가 하락하고 채권금리가 오르는 일이 있었다. 당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묶어서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프래자일 파이브(fragile five·깨지기 쉬운 다섯 나라, 5대 취약국)'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들은 예외 없이 경상수지 적자가 커서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로 달러를 회수하면 달러 부족 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큰 곳이다. 작년 터키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7.51%에 달했다. 그 뒤를 남아프리카공화국(5.46%), 인도(3.82%), 브라질(2.57%), 인도네시아(2.1%) 등이 잇고 있다. 이번에는 이미 사전에 '예방주사'를 맞아서 덜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경상수지 적자가 큰 이 다섯 나라에서 주식과 채권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우려는 크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영향 적을 듯"

한국의 경우에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5%를 넘어서는 등 무역으로 인한 달러가 풍부한 편이어서 테이퍼링의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다수다. 지난 5~8월에도 다른 신흥국에선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한국으론 외국인 자금이 들어와 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서 "신흥국 위기에 한국이 피난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년간 한국의 외국인 보유 금융자산은 연평균 5%가 늘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11%가 늘었다"며 "외국인 자금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테이퍼링의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흥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 세계가 요동치는데 한국만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금융 당국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시중에 자금을 충분하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