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5 新중년] [제2부] 봉사하고 즐기고 일하는 인생 후반전… 新중년은 N·E·W(Noble·Enjoying·Working) 세대

2000년대 신중년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이들의 특징을 모아보면 '새롭다(NEW)'는 영어 단어로 정리된다. 신중년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봉사를 통한 품위(Noble)를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삶의 즐거움을 찾고(Enjoying), 더 일하고 싶어 하는(Working) 세대다. 신세대가 연령으로 구분되는 젊은 신인류라면, 신중년은 문화·사회적으로 다른 신인류인 셈이다.

N(Noble)

75세에 명예변호사로 자원봉사… 60대 이상 봉사활동 5년새 62% 늘어

2009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는 특별한 변호사를 위한 위촉장을 만들었다. 주인공은 10년간 서울중앙지법 민원실에서 일해 온 강선희(75)씨. 대한변협은 "오랜 봉사에 감사드린다"며 강씨를 '명예 변호사'로 위촉했다. 1961년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강씨는 48년 만인 2009년 일흔하나에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 변호사가 됐다. 그가 통과한 '시험'은 바로 '자원 봉사'였다.

16일 서울중앙지법 동관 1층 제1종합민원실에서 만난 강씨. '시민자원봉사'라는 명패가 놓인 자리에 앉은 그는 대부분 서서 하루(평일 오전 10시~오후 4시) 평균 민원인 70~80명을 상대로 소장 작성과 소송 절차 등을 설명한다. 벌써 14년째다.

법조인을 꿈꿨던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4남매를 낳아 길렀다. 그러다가 2000년 중앙지법에서 법률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예순둘 나이에 봉사를 시작했다. 법원을 찾는 이들을 제대로 도와주려고 가정 법률 관련 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법 공부였다. 그는 "매일 새벽까지 민사소송법, 형법 등 온갖 법전을 새로 공부해서 민원인을 상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강씨처럼 봉사를 통해 뜻깊은 인생 후반전을 보내는 신중년이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0대 이상 봉사 활동 참여자는 2007년 4만2642명에서 2012년 6만9187명으로 62.2% 급증했다. 봉사 활동 총횟수도 79만1523회에서 132만3371회로 대폭 늘었다. 특히 작년 60대 이상 신중년은 자신의 노하우를 살려 남을 돕는 전문 봉사를 9만613회 했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작년 60대 이상 1인당 연평균 봉사 시간은 60.3시간으로 전체 연령대 21.9시간의 3배에 가깝다.

이렇게 봉사 욕구나 활동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직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신중년의 봉사 활동은 많이 미흡하다. MTUS(국가별 생활시간 활용 연구)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는 평균적으로 1년에 18시간 15분 동안 봉사 활동을 했다. 네덜란드(170시간 20분), 미국(79시간), 영국(36시간 30분)에 비해 현저히 적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석원 교수는 "신중년의 봉사 욕구를 실천으로 옮겨주는 매개체 격인 기관이나 단체들이 아직도 직장인, 학생을 선호하는 것 같다"면서 "신중년 사회봉사 인프라'를 뒷받침해 줄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시에는 '새노인운동본부'라는 신중년 모임이 있다. 이들은 지역아동센터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돌보고, 초·중·고등학교를 돌며 4·4만세운동, 의병 활동 등 익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친다. 전직 군장(郡長), 교장선생님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60명이 2005년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가르친 아이는 2만4000명을 넘어섰다. 이 모임 이용희(77) 대표는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면서 "능력 있는 신중년이 사회에 지식과 경륜을 나눠 주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했다. 신중년은 '자기 성취'와 '사회 환원'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65~74세의 자원봉사 활동 이유는 자기 성취가 69.7%로 가장 높았고, 사회 환원이 25.3%,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2.4%, 시간 보내기가 2% 순으로 뒤를 이었다.

'법원 할머니' 강씨는 지금도 하루 5~6시간씩 자며 한창 법 공부 중이다. 14년간 단 한 번도 지각·결근이 없었다. "힘에 부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알려주면 정말 좋아한다"며 "사람들로부터 사랑·인정·존경을 받아 건강해졌다"고 답하며 웃었다. 그는 "인생에서 신중년 때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다"고 했다.

E(Enjoying)

72세 영화감독, 60代 벨리댄스 스타… 65세 이상 72%가 한 가지 이상 여가활동

지난달 19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서울영상미디어센터 내 회의실. '이 장면은 롱숏(멀리서 찍는 것)이 더 좋았어" "아니야, 표정이 드러나는 게 더 좋아" 등의 영화 품평이 한창이다. 최수웅·이영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착한 이별(웰-다잉)'의 시사회 자리다. 이날 시사회가 특별한 것은 두 감독이 모두 일흔두 살 동갑내기란 점, 또 첫 작품이란 점이다. 신중년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경기도 일대 경로당을 다니면서 인터뷰해 찍은 것이다. 최씨는 "죽기 전날까지 열심히 살다 가면 후회 없는 인생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즐기자는 밝은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최수웅씨는 대기업 계열 보험사에서 30년간 일하다 퇴직했고, 명문 여대 법학과 출신의 이영자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군인을 만나 전업주부가 됐다. 그러나 최씨는 자타 공인 영화광으로 쉴 때는 영화를 끼고 살았고, 이씨도 한때 배우나 성우의 길을 고민했던 '끼' 있는 신중년이었다. 이들이 감독이 되는 데 큰돈이 든 건 아니다. 대한노인회와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무료로 영화 촬영 교육을 받았고, 1만원에 카메라 등 전문 장비를 빌려서 영화를 찍었다. 편집 등 후반 작업도 센터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돈이 거의 없다. 이날 시사회에는 동료 신중년 감독 2명이 더 참석했다. 신호등 제조업체에 다니다 은퇴해 '소통'이란 가족 영화를 찍은 박봉하(68)씨와, 주부로서 '멈춰진 시간'이란 노인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를 찍은 신춘몽(63)씨가 그들이다. 신춘몽씨는 "내가 자서전을 남긴다면 영화를 찍은 게 가장 첫머리에 올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신중년은 여가·문화 생활을 즐긴다. 신중년의 문화 활동은 특히 각 지역의 복지관·문화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요즘 신중년 사이에선 "과거엔 아이들 학군(學群) 따라 이사를 했지만 이제는 복지관·문화원 따라 이사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노인종합복지관은 2008년 226곳에서 5년 만에 300곳으로 32%가량 늘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복지관을 찾는 신중년이 100만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1만5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1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2.2%가 한 가지 이상 문화·여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39.4%가 주 4회 이상, 32.5%가 주 2~3회 문화·여가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퍼스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송영숙(64)씨는 벨리댄서다. 평생 주부로 산 송씨는 재작년 처음 벨리댄스를 접했다. 송씨는 "처음엔 배꼽이 드러나는 벨리복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민망했지만 이젠 남들이 나를 보고 손뼉 쳐주는 게 여간 신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W(Working)

일하는 新중년 64% "5년 이상 더 일할 것"

신중년의 핵심 키워드 또 하나는 '일'이다.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해진 신중년은 더 일하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용률(전체 인구 가운데 일을 하는 사람의 비율)은 1980년 28.1%에서 2012년 37.5%로 10%포인트 가까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00년 196만명에서 지난해 311만명으로 증가했다. 창업에도 적극 나서면서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07년 170만1000명에서 올해 182만5000명으로 6년 만에 7.3% 늘었다. 같은 기간 다른 모든 연령층에서 27.6~11.6%포인트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일에 대한 태도도 적극적이다. 본지가 한국고용정보원에 의뢰해 1938년부터 1953년 사이 태어난 신중년 3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일하고 있는 신중년의 64.5%는 '앞으로 5년 이상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석원 교수팀과 '노인 실태 조사'를 분석해 본 결과 일하지 않는 신중년 가운데 '일하고 싶다'는 비율이 1994년 7.9%에서 2008년 32.3%로 증가했다.

이런 통계는 결국 신중년이 일 자체를 즐기는 세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이 곧 여가인 삶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젊어서 보험회사에 다니다가 지금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경제 교육 강사를 하고 있는 최수웅(72)씨는 "일하고 있는 우리는 늙어서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할 뿐"이라며 "일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정말 감사하고 힘이 다하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70) 건전재정포럼 대표는 "신중년이 일하면 사회 전체의 부양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신중년들에게 일을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