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가 둥글지 않고 두꺼운 종잇장 같다면?

  • 이상정(L153 art company 대표)

입력 : 2013.12.26 10:02

Infopack | EXHIBITION

도자기가 대개 둥그스름한 것이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그런데 평평한 도자기 라면? 무엇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이승희 작가의 도자 작품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회화 작품처럼 벽면에 걸린다. 평면 도자판 위에 옛 도자기들이 도톰하게 돋아난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하는 고려·조선시대의 청자, 백자, 청화백자, 분청사기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두께 1센티미터 형태로 그의 작품 속에서 거듭난다.

전시 ‘Beyond expectation- 예상을 뛰어넘는 예상’
멀리서 바라보면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그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뭔가 현대적인 소재로 제작한 평면 물체를 특수한 한지에 부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캔버스처럼 바탕을 이루는 평면 도자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흙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므로 까칠한 촉감이다. 조금 도드라지며 매끄럽게 올라온 ‘옛 유물’ 에는 안료와 유약을 발라 반짝이며 빛을 반사한다. 매끄러움과 거침, 돋음과 낮음, 유색과 무색, 빛의 반사와 흡수 등 모든 상반성이 한 판에 담겨 구워져 나온다. 바탕 보다 도드라지게 만들려면 묽은 흙물을 바르고 마르기 또 바르기를 70여 차례는 거듭해야 한다. 흙으로 네모난 얇은 판을 만드는 작업부터 흙물을 바르고 완성해 가마에서 최종 작품이 나오기까지 덧칠도 개칠도 불가능하다. 단 한 번의 손길이 무수히 반복 중첩된 결과가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 작가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봇물 넘치듯 가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오기까지는 3년이 넘는 연구와 실험이 필요했다. 90% 이상을 버려야 했던 초기 작업 세월이 지난했을 듯하다. “아니다. 재미있었다. 실험하는 과정이 즐거웠다”라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작품에 대한 집념을 읽는다. 그렇지 않다면 흙과 불을 찾아 반백 년을 살던 터전을 뒤에 남겨뒀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중국 최고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덩어리 느낌이 나는 오브제 작업도 했고 이미지를 평면으로 만드는 판 작업도 했다. 어느 순간 흙의 한계가 다가왔고 흙에 생각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큼을 느꼈다. 3D의 도자기가 2D 형태로 제작되는 그만의 작품은 일반인들의 상상과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전시 ‘Beyond expectation- 예상을 뛰어넘는 예상’ 은 1월 8일까지 박여숙화랑에서, 그리고 140년 역사를 지닌 미국 갤러리 ‘Wally Findlay(www.wallyfindlay.com)’에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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