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드럼을 연주한다. 자그마치 40년째다. 어느새 드럼이 제 몸처럼 편안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영원히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 모습 그대로 음악에 임하고 싶다는 쉰여섯의 소년. 그의 이야기.
얼마 전 문을 연 광화문의 한 라이브 바. 드러머 신현규(56) 씨는 평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이곳 무대를 지킨다. 무심코 맥주 한잔 생각나 들른 바에서 그가 빚어낸 리듬에 귀를 들썩이다 무대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 손님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신씨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간 서울의 내로라하는 재즈클럽을 주무대로 활동하며 신촌블루스·이정식·웅산·서영은 등 걸출한 뮤지션들의 음반 작업에도 다수 참여한 베테랑. 최근엔 ‘묻어버린 아픔’이란 곡으로 유명한 가수 김동환의 새 노래 ‘기타의 독백’을 녹음했다고. ‘친한 선배’ 김동환을 “끊임없이 창작에 매진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그 또한 그가 존경한다는 선 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철들었다는 말 제일 싫어”
신씨가 처음 드럼 스틱을 잡은 것은 중3 시절. 당시는 바야흐로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가 젊음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1970년대. 친구들이 저마다 악기 하나씩 섭렵해갈 무렵 그는 자연스레 드럼을 택했다. 장난처럼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음악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후 고교 때부터는 본격적인 프로의 길로 접어든다. 장발 가발을 쓰고 무교동 나이트클럽 등지를 무대 삼아 끼를 펼쳤다. 당시 그림에도 상당한 재주가 있었던 신씨가 음악으로 선회하는 것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번 빠진 음악에서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신씨는 말한다. “미술은 혼자 하는 작업인 반면 음악은 여러 명이 앙상블을 이루는 작업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좋았다.”
젊은 DJ와 힙합도 OK
드러머 신현규의 장점은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록, 펑키, 솔,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모두 그의 놀이터다. 힙합이나 트로트도 언젠가 도전하고 싶은 장르다. “장르의 벽을 깨기 시작한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트로트의 구절구절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그는 마음에 와닿는 곡이라면 어떤 장르라도 좋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 신씨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만드는 것. “나만의 컬러를 갖는 게 평생의 꿈이다. 아마 모든 뮤지션의 꿈이기도 하겠지. 다르게 연주하고 싶은 욕망.” 신현규만의 컬러를 꼽는다면? “글쎄… 멜로디틱한 것을 좋아한다. 드럼은 피아노나 기타처럼 리듬 악기지만, 멜로디틱하게 연주하는 것이 나의 색깔이라면 색깔이 아닐까.”
연주와 함께 곡 창작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신씨는 창작곡 발표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젊은 DJ와 협업해 힙합곡을 발표해도 좋을 것 같다(웃음). 이밖에 여러 가지를 구상 중이다.”
음반 작업 외에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 것도 그의 소망 중 하나. “연주하고 곡 만들며 좋은 사람들과 같이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신씨는 앞으로도 스틱을 놓을 생각같은 건 없다. “관절염만 생기지 않는다면 계속 연주할 것이다. 아니다. 혹 관절염이 생기더라도 드럼을 치다 보면 낫지 않을까. 절름발이만 아니라면 계속 연주할 것이다.”
드러머 신현규를 만나고 나면, 드러머에 대한 일반적 선입견을 버리게 된다. 거칠고 과격한 로커의 얼굴 대신 온화하고 감성적인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달까. “나도 내 성격을 잘 모르겠다. 참고로 혈액형은 B형이다(웃음).”
그는 드럼 아닌 다른 취미는 없냐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최근엔 승마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한다. “언젠가 가까이에서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말이 동물 같지 않더라. 따뜻한 시선이 꼭 사람 같았다. 넓은 마당이 있다면 조랑말을 데려다 애완견처럼 길러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