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26 10:08

Essay | 25년 만에 다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

얼마 전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근에 다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눈 적이 있다. 젊었을 때 읽은 조르바와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은 조르바는 달리 다가왔기에 조르바를 소재로 ‘수다’를 떨었던 것. 그 저녁의 인연으로, 변화된 생각의 단상을 글로 정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해달라는 이야기와도 같다.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땐 당연히 읽은 사람의 살아온 경험이 투사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조르바, 아니 카잔차키스를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 섬의 파도와 태양, 포도주, 이국적인 풍경과 모양을 알 수 없는 나무와 열매, 작은 마을과 성당, 억센 크레타인과 마녀사냥 등으로 기억된다. 그 속 조르바는 많은 여성을 거리낌 없이 만나고, 마음 내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들처럼 자유를 향해 언제나 자신을 열어젖히고 춤을 추고 산투르를 연주하던 인물이었다. 나는 아련하게 먼 미지의 세계인 크레타와 그의 자유를 동경하고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크레타에 가리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세세한 내용은 모두 잊은 지 오래된 지금, 불현듯 다시 조르바를 손에 들고 꼼꼼히 되씹으며 읽어 내려갔다.

두목이란 애칭으로 불린 책 속의 주인공은 카잔차키스 자신이다. 그는 우유부단한 주인공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삶의 본질과 부딪히게 만든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조르바를 그가 만난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서술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문인으로 칭송받는 카잔차키스가 무엇 때문에 6개월밖에 만나지 않았던, 게다가 그다지 배운 것 없는 인간 조르바에게 경도되었을까. 카잔차키스는 일생동안 그리스의 신화부터 호메로스, 성 프란체스코, 니체, 베르그송, 슈바이처, 붓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유럽의 지성사부터 그리스도의 신앙, 철학과 종교, 신화와 신성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지적으로 탐구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다. 여행과 꿈을 통해 그는 세상을 만났고 신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조르바를 통해 비로소 살과 뼈, 그리고 피가 팽팽히 돌고 있는 육신, 즉 인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이성적 관념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원시적 인간, 혹은 태초의 인간’을 그는 조르바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고, 그가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의 한 자락을 조르바를 통해 발견한 것이다.

카잔차키스가 살았던 20세기의 벽두는 어땠는가. 유럽 곳곳에서 신화는 무너지고 신들은 부정되고 이성의 확고한 승리가 균열되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러시아에서 탄생한 새로운 구세주 복음이라 믿었던 볼셰비키와 레닌의 실험이 무너지고 파시즘과 인종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며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참혹한 시절, 카잔차키스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묻고, 무엇을 찾았을까.

그가 붓다에 천착하고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든 인간상으로 받아들이던 때, 한편에선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간 이성의 진정한 복귀를 주장한 니체가 말한 초인에 경도되었다 할지라도, 니체의 초인이 그리스도의 또 다른 재림에 불과하다는 자각은 결국 조르바를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했으리라.

조르바를 통해 카잔차키스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앎은 무엇인가. 신성은 무엇이고 믿음은 무엇인가. 금과옥조와 같은 도덕과 종교는 무엇이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할 자신이 나에겐 없다.

20대 시절 고뇌와 방황의 시간에 만났던 스승을 통해 나는 조르바의 한 단면을 만났다. 어떠한 격식이나 형식으로 해석하려 하면 그 해석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던 그분은 지금도 불가해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내 자신에 대한 깨달음의 열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에 대해 안다고 위안하던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환만이 존재한다. 카잔차키스는 이성의 예리한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오롯이 ‘모름의 세계’와 만날 수밖에 없음을 조르바를 통해 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모름에서 자유는 시작되고 있음을 그를 통해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바로 ‘모르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최근 만난 조르바는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몰아칠 때 카잔차키스는 시베리아에 있던 조르바로부터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운 녹색 보석을 보러 시베리아로 오라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때 카잔차키스는 철없는 아이 같은 조르바에게 실망한다. 지옥 같은 전쟁의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운 녹색 보석을 보러 한가로이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해서 구경 오라니! 아름다움이 어쨌단 말인가! 아름다움은 비정해서 인간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가지 않았다. 그 후에 조르바에게서 다시 편지가 날아왔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두목, 당신은 글쟁이에 지나지 않아요. 이곳에 왔더라면 아름다운 녹색 보석을 구경할 평생의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얻었을 텐데, 못 보게 되었군요. 가끔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으면 혼자 앉아 지옥이 있나 없나 궁리 해보죠. 하지만 어떤 글쟁이들은 진짜로 지옥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자유는 무엇이고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인간의 고통은 또 무엇이더냐. 우린 대부분의 시간을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보내고 만다. 그런 나에게 조르바는 망설이지 말라고, 후회하지도 말라고 간곡히 말을 건네고 있다.


유영호(49) 작가는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개념 작업을 선보였으며, 사회와 개인의 상호 행위에 중점을 둔 공공미술 작업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 ‘그리팅맨(Greeting Man)’이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10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그리팅맨 1호에 이어, 지난해 10월 강원도 양구군에 그리팅맨 2호를 설치했다.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리팅맨은 유 작가가 전 세계에 한국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뜻에서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 다음 후보지는 베트남의 항구 도시 다낭과 에콰도르령인 갈라파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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