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머리고개에서 산행을 준비하는 사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서둘러 배낭을 짊어지고 부지런히 발을 옮긴다. 잠시 비탈길에서 숨을 헐떡이고 나니 몸이 따뜻해진다. 기온은 낮아도 쾌청한 날씨에 기분이 상쾌했다. 겨울 산행은 이렇게 나를 뜨겁게 만들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재미가 있다. 몸속의 에너지로 추위를 이기는 것이다.
추위를 피할 수 없는 요즘 경기도 파주시와 양주시의 경계에 있는 앵무봉(鸚鵡峰·621.2m)을 찾았다. 서울에서 가까워 접근이 쉬운 데다 추운 날이면 시야가 좋아 생각 외의 장쾌한 조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눈 쌓인 산길을 걸으며 진정한 겨울 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북한산~수락산 산줄기 파노라마
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쪽에 있는 이 봉우리는 예전에는 등산객이 많지 않았다. 주능선에 군사 시설이 있어 접근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산자락이 개발되고 교통이 좋아지며 지금은 여러 가닥의 산길이 생겼다. 능선 종주부터 원점 회귀까지 다양한 산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앵무봉 등산 코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이 파주의 천년 고찰 보광사(普光寺)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 가운데 가장 짧지만 가파르다. 단시간에 정상에 올라 등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앵무봉의 진면목을 보려면 동서로 뻗은 주능선을 타야 한다. 주능선 남쪽으로 북한산~도봉산~수락산으로 연결된 수려한 산줄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환상적인 조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양주시 장흥면과 백석읍의 경계를 이루는 말머리고개에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 출발 지점의 고도가 높아 앵무봉 정상까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갯마루에 있는 버스 정류소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5분쯤 걸으면 이정표가 나오고 비탈을 지나 주능선으로 접어든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짜릿한 추위에 몸서리를 친다. 고갯마루에서 한 시간 거리의 봉수대는 주능선 최고의 전망대라 할 만하다. 특히 도봉산에서 우이령을 거쳐 북한산으로 이어진 화려한 산줄기의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봉수대 전망 일품
봉수대에 오르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등산객을 반긴다. 하지만 중국발 미세 먼지 탓에 산자락 주변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직선거리 7㎞ 남짓한 도봉산 오봉이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다. 산정에서의 조망은 기온이 떨어질수록 좋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기 오염 때문에 맑고 추운 날에도 시원한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돌고개 유원지가 보이는 전망바위와 넓은 공터를 지나면 정상으로 이어진 마지막 비탈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길고 완만한 산길을 통과하면 앵무봉 꼭대기의 사각지붕 정자가 등산객을 맞는다.
앵무봉 정상은 주변에 나무가 많아 전망은 그저 그렇다. 북쪽으로 조금 이동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의 작은 데크의 조망이 훨씬 좋다. 발아래 깔리는 보광사와 주변 산자락이 한눈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