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년 만에 또 '돈 가뭄'… 내년 재정위기 오나

중국 금융시장에서 돈 가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나타난 현상이다. 23일 중국의 대표적 단기 금리인 7일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가 장중 한때 연 10%까지 치솟았다. 이 금리는 은행들이 자금 도매시장에서 급전을 빌릴 때 내는 돈값으로 중국 내 자금 사정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지표다. 평상시 4%대 초반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평균치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중국의 돈 가뭄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부채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그림자 금융'에 대한 수술을 위해 하반기부터 돈줄을 조이기 시작한 데다, 미국발 양적 완화 축소 변수까지 겹치면서 자금 시장의 불안정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부터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이 시중 통화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일주일에 두 차례씩 공급하던 자금줄을 잠그자 2주일 만인 18일부터 은행 간 자금 시장에서 자금이 말라버렸다.

단기 금리가 치솟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은 19일부터 이틀간 시장에 3000억위안(한화 52조3000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약발이 먹히지 않자 중국 인민은행은 23일 290억위안(5조원)을 추가 투입했고, 중국 정부는 "언론들은 '자금 경색(Cash Crunch)'이라는 표현을 써 위기를 부추겨선 안 된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24일 이후 RP 금리는 5.9%대로 떨어지면서 일단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딜레마에 빠진 인민은행

인민은행은 뛰는 금리를 잡으려고 19일 온라인으로 정확한 금액과 시점을 밝히지 않은 채 유동성 공급 사실만 알렸으나 불안이 오히려 증폭되자 20일 늦은 오후에야 '3000억위안 공급' 사실을 알렸다. 이는 '한 달 후 결과 공개'라는 규정마저 깨고 통보한 것이라 다급한 중국 금융당국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제는 인민은행이 속 시원히 돈을 풀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정쩡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국가 총부채가 5년 전 국내총생산(GDP) 대비 130%에서 올해 200% 넘게 급증한 점이 걸림돌이다. 현재 시중 통화량이 전년보다 14% 넘게 증가해 올해 목표치(13%)를 넘어선 것도 인민은행이 돈을 푸는 데 족쇄가 되고 있다. 선지앤광(沈建光) 미즈호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은행이 자금을 공급해야 하지만, '통화 완화'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인민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단기 자금 시장이 6개월 사이 두 차례 유동성 경색 소요를 겪는 것은 디레버리징(차입 청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며 "따라서 앞으로 금융시장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금 수요가 늘어나는 내년 춘제(春節·음력설)까지 중국 은행들이 돈줄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왕타오(汪濤) UBS 이코노미스트는 "자금시장의 변동성은 최소 몇 주간 더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한 해 위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은행(BoC)은 2014년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개혁·긴축 기조와 미국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이 맞물리는 내년 내내 중국 은행들이 유동성 조달에 곤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

미 포브스지는 "6월에 이어 신용 경색이 재발한 것은 빚에 의존한 경제 구조가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며 "신용 경색 재발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은행권의 자금 경색은 증시에서 '차이나 디스카운트(중국 저평가)'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은행의 자금난이 은행으로부터 투자·운영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으로 고스란히 전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존 폴 스미스 도이체방크 전략가는 "중국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실패해 빚을 못 갚는) 부채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르면 내년에 재정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올 들어 홍콩 증시 최대 규모로 상장한 중국 11위 은행인 광다(光大)은행은 이례적으로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은행의 자금난으로 기업들의 생산이 저조해지고 소비마저 줄게 되면 중국 성장률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 중국의 내년 성장 목표가 7.0~7.5%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아래로도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의 성장률 하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번 돈 가뭄이 계절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의 결제 목적 자금 수요가 늘었고, 예대율 규제를 맞추기 위한 시중은행들의 자금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일시적인 가뭄이어서 금리가 4~5% 수준으로 복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