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던 '최후의 만찬' 이제 들려드리죠

'초록의 불꽃 모양을 가진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다. 나무는 살아 숨 쉬며 이글이글 타오르듯이 움직이고 소용돌이친다. 어두운 밤하늘은 풍부하고 강렬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을 띠고 층층이, 겹겹으로 쌓여 강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모습으로 달과 별을 휘감는다.'

이 묘사를 듣고 떠오르는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Gogh)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눈으로 그림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세계 명화 500여작품을 '말'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현정 화면해설작가와 예술컨설팅 회사인 H큐브 황규성 대표, 시각장애인인 심준구 한국복지방송 대표와 이명근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회장 등 10여명.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귀로 듣는 미술 전시회'를 기획한 주인공들이다.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미술 감상과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시각장애 아나운서인 심준구 대표는 "지난가을 아내와 딸과 함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중세 미술전을 찾았지만 가족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어 큰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며 "일반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끼리도 미술 작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작품 선정과 초고 작성은 미술사를 전공하고 삼성문화재단 리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황규성 대표가 맡았다. 밀레의 '만종', 김홍도의 '씨름도', 고갱의 '자화상' 등 세계 명화 500여점을 선정했다. 황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미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을 중심으로 했다"며 "고대·중세·근대 등 시대와 서양·동양·한국 등 지역을 아우르고 회화뿐 아니라 조각도 담아 '미술'이라는 분야를 골고루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작품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또 일상에 있는 소품과 비교하며 쉽게 풀어서 설명했고요."

비장애인인 황 대표가 작성한 초고를 시각장애인들이 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토론하며 수정하는 작업을 자문단이 맡았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500여개의 묘사 원고를 끊임없이 고쳤다. 대표적인 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심준구 대표는 "우리는 '만찬'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 마주 보며 음식을 먹는 장면을 상상한다"며 "보이는 사람에게는 너무 기본적이어서 간과하기 쉬운 시각적 정보를 잡아내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긴 탁자에 예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제자들이 여섯 명씩 나눠 앉아 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작품마다 화가들의 독특한 화풍이 있잖아요. 그걸 시각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색채와 질감, 공간감, 입체감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활용한 표현으로 작품을 재구성했죠."(장현정 작가)

특히 이번 전시회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한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녹음할 계획이다. 지난달부터 오는 31일까지 참여 신청을 받아 내년 1월 11~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목소리 콘테스트'를 연다. 현재까지 신청한 5~6만여명의 사람 목소리를 듣고 500여명을 추려낸 뒤 바로 미술 작품 해설 오디오를 녹음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김지은 부장은 "눈을 감고 들었을 때 말하는 사람의 친근한 표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주로 선정할 것"이라며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